프르지브람 스바타 호라 성모 성지. 해발 약 580~590m 언덕에 자리한 성모 성지로 1647년부터 예수회가 순례 사목을 맡으며 보헤미아 대표 성모 성지로 발전했다. 1773년 클레멘스 14세 교황에 의해 전 세계 예수회가 해산되면서 프라하대교구가 관리했고, 1861~1950년, 1990~2025년 구속주회가 순례 사목을 맡았다. 1905년 성 비오 10세 교황 때 준 대성전으로 승격됐다. 현재 프라하대교구가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보헤미아’ 하면 자유로운 예술가, 집시 음악, 낡은 카페에 앉아 시를 쓰는 낭만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는 서유럽의 오해와 상상이 빚어낸 허상입니다.
라틴어 ‘Boiohaemum’에서 유래한 보헤미아(Bohemia)는 원래 ‘보이이족의 땅’이란 뜻으로, 켈트족이 살던 지역을 가리킵니다. 지금의 체코 지역으로, 슬라브계 체코인이 프라하를 중심으로 보헤미아 공국과 왕국을 이루고 살았죠. 그래서 체코어로 보헤미아를 체히(?echy), 즉 체코인의 땅이라 부릅니다.
왜 이런 엉뚱한 이미지가 생겼을까요? 중세 말 유럽에 나타난 로마니 사람들을 보헤미아에서 온 이들로 잘못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9세기 파리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이 결합하면서 보헤미안은 유랑과 낭만의 대명사처럼 굳어졌습니다.
실제 보헤미아의 역사는 낭만보다 합스부르크 지배와 종교 갈등, 근현대 산업화의 상처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체코의 민낯을 마주하려면 프라하뿐 아니라 광산 도시를 들러봐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프르지브람입니다. 프라하가 체코의 화려한 무대라면, 프르지브람은 그 무대 뒤 가려진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보헤미아의 대표 성모 성지 스바타 호라(Svatá Hora), 즉 ‘거룩한 산’이 있습니다.
스바타 호라 성모 성지 성모 승천 바실리카와 회랑. 카를로 루라고가 예수회 베냐민 슐라이어 신부의 구상에 따라 1659~1670년 조성했다. 남북 각 9칸, 동서 각 7칸으로 된 80×72m 규모의 직사각형 회랑이 중앙의 높은 석조 테라스와 성모 승천 바실리카를 둘러싸고 있으며, 회랑 네 모서리에는 플젠, 프라하, 므니셰크, 브르제즈니체 팔각 소성당이 배치됐다.
광산 도시에 자리한 성모 순례지
스바타 호라는 프라하에서 차로 1시간 남짓의 가까운 도시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보헤미아의 들판은 알프스처럼 극적이지 않습니다. 낮고 넓게 펼쳐지는 풍경 속에 오래된 삶의 결이 스며들어 있고, 그 가운데 은과 납, 철과 우라늄을 캐던 보헤미아의 대표적 광산 도시 프르지브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산 도시가 그렇듯 이곳도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19세기 산업 발전과 채굴 기술이 가져온 부이며, 다른 하나는 그 이면에 그늘진 노동의 위험입니다. 광업은 도시를 부유하게 하였지만, 그 부는 광부들의 땀으로 일군 것이었습니다. 20세기에는 우라늄 채굴과 공산주의 체제의 상처도 깊이 남아있지요. 이런 도시 위에 성모 순례지가 자리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스바타 호라의 외부 대관(戴冠) 제대. 1732년 6월 22일 스바타 호라 성모상과 아기 예수상에 금관을 씌우는 대관식이 거행됐고, 이후 대관 기념 순례가 성지의 중요한 전통이 됐다.
눈먼 순례자 빛 되찾은 곳, 보헤미아 성지로
스바타 호라의 역사는 성모님의 도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말로베츠 가문의 한 기사가 성모님의 도움으로 도적의 위험에서 벗어난 뒤 감사의 뜻으로 세운 소성당이 기원입니다. 세월이 흘러 16세기 전반에 프라하 초대 대교구장인 아르노슈트 대주교가 조각한 목조 성모상을 이곳에 모시면서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이 상은 프르지브람 요새 안 소성당에 있었는데, 후스전쟁 중 광산에 숨겼다가 여러 성당을 거쳐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1632년 6월 13일 얀 프로하스카에게 일어난 치유의 기적 덕분에 소성당은 널리 알려집니다. 19년 전 실명하고 프라하에서 구걸하며 살던 그는 꿈에 여러 번 나타난 노인의 계시를 듣고 어린 손자와 함께 스바타 호라를 순례했다가 시력을 되찾습니다.
이 소식은 보헤미아 전역에 퍼졌습니다. 전쟁과 종교 갈등으로 불안하던 시대에 이 이야기는 개인의 치유담을 넘어 보헤미아 가톨릭 신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634년에는 페르디난트 2세 황제 부자가 직접 순례하면서 보헤미아 대표 성지로 자리매김하지요.
성모 승천 바실리카 주 제대와 기적의 성모상. 1684년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단계적으로 보완됐고, 1745~1746년 프라하의 은세공장 요제프 자이츠가 은으로 제대를 제작했다. 중앙에 모신 고딕 양식의 목조 성모상은 14세기 중반에 아르노슈트 대주교가 직접 배나무로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365개 계단 올라 마주하는 성모님의 성채
프르지브람역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면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는 지붕 덮인 순례 계단 입구가 나타납니다. 예수회가 순례 사목을 맡던 18세기에 조성된 순례길입니다. 기둥과 아치가 반복되는 통로를 따라 343개 계단을 오르면 성지에 닿습니다. 성지 안쪽 계단까지 더하면 365개가 된다니, 하루하루를 하느님께 가까이 올려드리는 길처럼 느껴집니다.
정상에서 만나는 스바타 호라는 바로크 성채와 같습니다. 높은 테라스 위에 성모 승천 바실리카 주 제대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로 직사각형 회랑과 회랑 네 모서리에 성지를 후원한 도시와 지역, 후원자들의 기억을 담고 있는 소성당이 이어집니다. 회랑은 안쪽으로 열려 있어 순례자는 아치 사이로 중앙 마당과 테라스 위 바실리카를 바라보며 걷게 됩니다.
회랑의 벽과 천장에는 성모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사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순례자들은 바깥의 빛과 안쪽의 그늘이 반복되는 회랑을 따라 그림을 보며 걸으면서 다른 이에게 주어진 은총에 감사하며 자기 고통을 봉헌했습니다.
바로크 시대 순례지는 보면서 신앙을 키우게끔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하나의 전례 동선처럼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회랑을 돌면 바실리카 안 주 제대와 성모상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바실리카는 예수회가 옛 성모 소성당을 중심으로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엽까지 꾸준히 증축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대성당처럼 위압적이지는 않습니다.
낮고 응축된 공간 안에 금빛 장식, 은빛 제대, 성모상의 의복과 왕관이 겹치며 한 점의 중심을 만듭니다. 그 중심에 스바타 호라 성모상이 있습니다. 크지 않은 성모상 앞에 겹겹이 놓인 왕관과 봉헌물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이 앞에 얼마나 많은 청원과 감사를 내려놓았는지 보여줍니다.
스바타 호라의 특별함은 구조에 있지 않습니다. 세속과 성지, 지하 광산과 하늘 계단 위의 성모상, 노동과 기도를 한 쌍으로 겹쳐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얀은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순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를 보러 떠나지만, 결국 자기 삶을 새로 보는 법을 배웁니다. 체코의 거룩한 산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바꿔 봅니다.
<순례 팁>
※ 프라하 스미호프 역(지하철B) 앞 버스 터미널에서 프르지브람 행 노선버스(PID 393 등)나 기차(R26 급행) 이용. 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도보로 들로우하 거리 스바토호르스케 계단을 통해 이동
※ 스바타 호라 성모 승천 바실리카 미사: 주일 및 대축일 09:00, 11:00, 17:00, 평일 07:00(화·목), 09:00(토) 17:00(월·수·금·토)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