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벚꽃·철쭉 같은 화려한 봄꽃들이 지나간 후 녹음 짙은 초여름 뒤늦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물이 있다. 숲이나 시골 길부터 도심 아파트 단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산딸나무다. 나뭇가지를 가득 뒤덮은 커다란 꽃은 낮에는 마치 흰 나비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앉아있는 것처럼, 밤에는 은하수의 별들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흰 나비처럼, 별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꽃이 아니라 잎이 변형된 ‘포엽’이다. 진짜 꽃은 크기가 아주 작고, 여러 송이가 둥글게 모여 포엽에 둘러싸여 있다. 가을이 되면 겉표면이 올록볼록한 빨간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가 산딸기를 닮았다고 하여 산딸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 시대에 산딸나무는 참나무만큼이나 크기가 거대하고 목질이 튼튼해 십자가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산딸나무는 자신이 그처럼 잔혹한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보고 슬퍼하는 산딸나무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고통에 슬퍼하고 동정심을 보인 산딸나무야, 이제부터 너는 십자가로 쓰일 만큼 크게 자라지 않을 것이다. 너의 줄기는 가늘어지고, 가지는 구부러지고 휘게 자랄 것이며, 꽃은 두 장의 긴 꽃잎과 두 장의 짧은 꽃잎이 십자가 모양으로 피어나리라. 뾰족한 꽃잎 가장자리에는 못에 박힌 상처를 닮은 붉은 자국이, 꽃 한가운데는 가시관 모양의 꽃술이 자랄 것이다.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며 나의 수난을 기억할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산딸나무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에서 자생하지 않으므로 실제 십자가의 재목이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서양 문화권에서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산딸나무는 그리스도교에서 깊은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산딸나무는 품종마다 나무의 특성, 포엽이나 열매의 모양,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포엽은 흰색이 일반적이지만, 끝만 붉게 물들거나 포엽 전체가 진분홍색을 띠는 품종도 있다. 포엽이 얇고 끝이 뾰족한 품종도, 둥글고 끝이 안으로 말려 있는 품종도 있다. 어떤 품종이든 네 장의 포엽이 십자가를 연상시키고, 산딸나무 자체에 ‘고난 속 사랑’이라는 의미가 있어 다양한 테마의 기도 정원에 활용할 수 있다. 개화 시기에는 절화시장에서도 길게 자른 나뭇가지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산딸나무 가지는 밝은 녹색 잎과 흰 포엽의 존재감이 확실해 꽃꽂이에 넣어도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