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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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불며 복음 전하던 19세 청년… 11년간 공소 16곳 세워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26. 안동교구 가은본당 농암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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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공소는 매주 수요일 평일 미사가 봉헌되어 성체를 모신 감실이 있을 만큼 안동교구에서 가장 활성화된 공소로 손꼽힌다. 농암공소 제단.
농암공소 입구. 김한중 평신도 선교사가 매일 쓸고 닦고 아름답게 가꿔 깔끔하다.
안동교구 가은본당 농암공소는 19살 된 신상철(아우구스티노) 전교회장에 의해 설립된 공소이다. 2015년 새로 지은 농암공소 전경.


안동교구 가은본당 농암공소는 경북 문경시 농암면 농암길 71에 자리하고 있다. 농암리(籠岩里)는 경북 문경시 서남단에 자리한 마을로 동쪽으로는 상주 은척면, 서쪽으로는 상주 화북면, 남쪽으로는 상주 외서면, 북쪽으로는 문경 가은읍과 접해 있다. 소백산맥 줄기에 있어 사방으로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농암천이 마을을 끼고 흐르고 있다. ‘농암’은 마을에 있는 바위가 마치 장롱처럼 생겼다 해서 ‘농바위’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농암공소는 점촌본당 신상철(아우구스티노) 전교회장이 1956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안동교회사연구소가 펴낸 「안동가톨릭사학-공소 교회와 교구 사제단」 307쪽을 보면 농암공소가 1955년에 설립됐다고 기록돼 있다. 더불어 안동교구 홈페이지에는 1961년 4월에 설립됐다고 나와 있어 정확한 고증이 요구된다.



구교우 신상철, 문경 전교 선구자

신상철 전교회장은 문경 농암면 율수리 출신으로 5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구교우였다. 부산교구 신동원(다니엘) 신부가 그의 막내 아들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신 전교회장의 선조들은 상주 웃갈골 깊은 산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로 숨어들어 교우 7~8가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포졸에 쫓겨 충북 괴산군 청천면 시거리 옹기점에 정착했다. 이후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농암으로 이주했다.

신 전교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했다가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교우들이 많은 것을 보고 전교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길로 고향 농암으로 내려와 이 동네 저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56년 점촌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아르놀도 렌하르트 신부의 눈에 띄어 전교회장으로 발탁, 가은읍 일대뿐 아니라 안동교구 여러 지역에 가톨릭 신앙을 전하고 공소를 설립했다.

신 회장이 점촌 농암 마을에서 처음 복음을 전할 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는 농암면사무소(오늘날 농암면 행정복지센터)와 농암 시장이 있는 중심 거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팔을 불었다. 나팔을 한참 불면 어린아이·학생·아저씨·아주머니·총각·처녀·할아버지·할머니 모두가 모여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단 가톨릭교회를 소개하는 책을 무료로 나눠줬다. 그리고 “미신 행위를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간다”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다음에 나팔 소리가 나면 소리 나는 곳으로 오라”며 떠났다.

신 회장은 무엇보다 문경 일대에서 성행하던 미신을 없애는 데 힘썼다. 그는 예비 신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예부터 모셔왔던 성주단지나 토주단지, 삼신 바가지 등을 없애고 성수를 뿌리며 가정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줬다. 또 환자 방문과 죽은 이를 위한 연도뿐 아니라 상장례를 정성껏 도와줬다. 그의 가식 없는 삶에 많은 주민이 감화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신 회장은 1956~1967년 농암면·가은면·은척면 등지로 다니면서 전교해 16개 공소를 설립하고, 수백 명의 예비 신자를 모집해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줬다.

렌하르트 신부가 20세도 안 된 어린 신상철을 전교회장으로 임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성당에서 미국 구호물자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더욱 가난해진 주민들이 구호 물자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이들을 ‘밀가루 신자’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렌하르트 신부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외교인이 외교인을 가르치지 못하게’ 직접 가톨릭 교리를 가르쳤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교육과 평신도 양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목 활동에는 평신도와 헌신적인 수녀들이 필요하다. 사도 시대에 그랬듯이 믿음직한 ‘종신 부제’들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배운 사람들이며 신심이 깊고 현명하며 연륜이 풍부하다. 그들이 신자 공동체 안에서 혼인해 살고, 공소를 건립해 그곳에서 성체를 분배하며, 강론하고 가르쳐야 한다. 한국 선교의 인적 자원은 시대의 통상적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외교인들은 너무 활동적이어서 전교회장이나 레지오 마리애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사제에게는 직접적인 교회의 조력자, 교회의 종신 부제가 필요하다.”(렌하르트 신부, ‘점촌본당 연대기’, 1956~1957년. 「분도통사」 1639쪽)

그러면서 렌하르트 신부는 성당에서 구호 물자를 나눠주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구호 물자의 분배가 우리 신부님과 전교회장의 명예에 먹칠한다’는 한 평신도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제야 한국 선교에 서광이 비친다고 생각하는 선교사들이 많다. 이때를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가 한국 교회를 예비 신자로 채우기 위해 10만 톤의 양곡을 보내셨는지는 의문이다. 남한의 가난한 실향민들이 고맙게 받아 쓸 구호물자에 대해 교회가 한 번쯤은 강한 불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앞의 책)

신 회장은 농암공소를 설립하고 정해웅(요셉)씨 집에서 교우들과 예비 신자들과 함께 주일마다 공소 예절을 했다. 이때 참여한 인원이 20명이나 됐다고 한다. 공소를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 제3대 가은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성 베네딕도회 최영호(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가 1965년 지금의 공소 땅을 사들여 그해 벽돌집을 지어 공소 건물로 사용했다.



봉헌 50주년, 새 공소 건물로 도약

농암공소 봉헌 50주년을 맞은 2015년 공소 교우들의 숙원이던 새 공소 건물을 지었다. 공소 건축비 3억 원을 정인식(바오로)씨가 전액 봉헌했다. 이 봉헌금으로 2015년 4월 공사를 시작해 6개월 만에 완공, 그해 10월 19일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새 공소 축복식을 거행했다. 권 주교는 이날 농암공소 교우들에게 “하느님께 봉헌한 거룩한 이 집을 기도하는 장소, 말씀을 공부하는 장소, 예수님 가르침을 전하는 선교의 장소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건축 면적 238㎡(72평)로 웬만한 시골 성당 규모인 농암공소는 농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담장을 없애고 너른 마당을 조성해 누구나 부담 없이 공소를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붉은 벽돌로 외벽을 장식하고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를 설치하고, 마당에 성모상과 종탑을 꾸며 이곳이 가톨릭교회임을 알려준다. 공소 내벽은 흰색 칠감으로 마감돼 있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장식돼 있다. 창은 한지 그림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제단과 회중석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마감돼 있다. 제단은 제대와 감실, 독서대, 십자가, 성모상으로 꾸며져 있다.

농암공소는 안동교구 공소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공소로 손꼽힌다. 공소에서 봉헌되는 주일 미사에만 50~60명의 교우가, 매주 수요일 거행되는 평일 미사에도 평균 20~30명이 참여한다. 2024년 1월부터 파견돼 상주하고 있는 김한중(요셉) 선교사는 교우와 예비 신자들을 대상으로 교리와 성경을 가르치고, 쉬는 신자와 환자들을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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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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