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 입원 중이던 29주 차 산모에게 급박한 위기가 찾아왔다. 뱃속 아기의 심장박동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아기가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인근 어떤 병원도 산모와 아기를 받아주지 못했다. 결국 산모는 구급차를 타고 3시간 넘게 달린 끝에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 도착해 분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골든타임은 이미 흘러간 뒤였다. 그 긴박했던 3시간 동안 산모가 겪었을 극심한 공포와 끝내 사랑하는 아기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슬픔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이만 낳으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합계출산율 0.72명)다. 반면 결혼과 출산 연령은 점점 늦어져 첫 아이를 낳는 평균 나이가 33.1세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자연스레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가 늘어났고, 그 결과 쌍둥이나 세쌍둥이 같은 다태아 출생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이처럼 산모와 아기 모두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고위험 임신’이 급증하고 있지만, 국가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예산을 살펴보면, 보조생식술 지원 예산은 2020년 412억 원에서 2024년 1457억 원으로 3.5배 증가한 반면, 2025년 고위험 산모·신생아 지원 예산은 124억 원, 임신 사전 건강관리 예산은 88억 원으로, 정부 예산이 온통 ‘임신 성공 자체’에만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2025년 국정과제에서 ‘미프진’이란 낙태약을 합법화하고, 낙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과연 국가 예산이 여성과 태아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데 쓰이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일단 임신을 성공시켜 출산율만 높이고, 이후 산모와 태아가 겪을 위험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것이 우리 모습이다.
고령 임신과 다태아 임신은 조산이나 합병증 위험이 매우 크다. 출산 후 산모와 아기가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통합 치료할 전문센터는 전국에 단 22개 기관뿐이다. 기본적 분만 인프라를 지탱해줄 정책과 예산이 없다 보니,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사라지고 지역 분만실과 신생아실은 문을 닫고 있다. 실제 지난주에는 세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조산 증상으로 급히 모 권역전문센터를 찾았지만 “아이를 낳아도 인큐베이터(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하는 기가 막힌 일이 또 일어났다. 우리 시대 임산부와 새 생명이 갈 곳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에는 아담이 그의 아내를 인류의 어머니라 부르며 ‘하와’란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히브리어로 하와는 ‘살다’ ‘생명을 주다’ ‘생명을 유지하다’란 뜻의 동사 ‘하야’에서 유래됐다. 하느님께서 천지창조의 중심에 여성을 두고, 그 품을 통해 생명의 섭리를 이어가게 하신 뜻이 바로 이 이름에 담겨 있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해 낳고 기르는 가장 고귀하고 신비로운 여정을 걷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이 경이로운 과정이 인재(人災)와 다름없는 부실한 시스템으로 위협받고 있다. 단순히 출산율 숫자를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어날 준비를 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품은 산모의 생명을 안전히 지켜주는 것이다. 더 이상 차가운 구급차 안에서 눈물 흘리는 엄마가 없기를, 이젠 우리 사회가 이들의 외침에 답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