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진단을 내리는 시대,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 인간은 도구의 부산물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목적이다. 새 연재 ‘AI 말고 인간!’을 통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묻고 답한다. ‘AI가 ~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한다.’ 앞 절은 AI가 던지는 도전이고, 뒷 절은 그에 맞서는 인간의 반격이다.
요즘 우리가 즐겨 쓰는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질문을 던지면 즉각 답이 온다. 문장은 유려하고, 논리는 그럴듯하며, 분량도 충분하다. 그 답을 받아 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느낀다. ‘이것이 생각의 결과물’이라고. 그러나 기계가 말을 배운 이 시대에, 우리가 정작 잃어버린 것이 있다. 생각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이다.
스웨덴 룬드대학교와 영국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 공동 연구팀은 2026년 4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개념을 정밀하게 해부한다. 대형언어모델은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해 다음에 올 단어를 확률적으로 골라내는 장치다. 언어의 형식을 정교하게 모방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며, 그럴듯하게 들리도록 문장을 이어 붙일 뿐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지식의 환상’이라 부른다. AI의 출력이 유창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그것을 진짜 이해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AI는 다시 사용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답을 맞춰가고, 검증 대신 동조, 질문 대신 확인. 이 구조가 반복될수록 우리의 사유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나아가 연구팀은 AI가 우리의 지식만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오류까지 증폭시켜 되돌려준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AI에게서 정확한 답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 자신의 편견을 더 그럴듯한 형태로 돌려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유란 무엇인가. 사유는 질문에 즉각 답하는 능력이 아니다. 질문을 오래 품는 능력이다. 어떤 문제 앞에서 멈추고, 스스로와 논쟁하며, 확신이 흔들리는 경험을 통과하며 비로소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인간의 사유다. AI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사유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틀릴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도 계속 생각하는 것, 자신의 답을 의심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유의 본령이며, 인간이 AI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인간의 사유는 바로 그 불안과 버팀의 자리에서 깊어진다.
AI가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AI의 언어 생성과 인간의 사유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 혼동이 위험한 까닭은 AI를 과대평가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를 과소평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묻고, 받고, 소비하고, 넘어가는 일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스스로 흔들리는 법을 서서히 잊어간다. 편리함이라는 마취제 아래 사유의 근육이 조용히 약해진다. AI에게 편리함을 빌리되 사유만큼은 내주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는 기능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버티는 것,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 두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의 자리이며, 그것을 잃는 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식의 문제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언제, 답을 찾지 않고 질문 안에 오래 머물렀는가.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우리 사회가 미래 기술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 「AI 기반으로 재편되는 인터넷 사회의 특징과 필요 역량」, 「방송의 진화」, 「소셜 빅데이터를 활용한 미디어 분석 방법」, 「콘텐츠 큐레이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