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통번역사로 활동하며 저는 수많은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대개는 소개를 통한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저에게 이 인연들은 또 다른 모습의 예수님을 만나는 귀한 기회입니다.
최근 한 지인의 소개로 네 살 딸과 5개월 된 아들을 둔 이탈리아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직장 문제로 부산으로 이주한 이 가정은 막내아들 안드레아가 희귀병 진단을 받게 되면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진료를 오게 되었습니다.
안드레아는 정밀 진단 결과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술 날짜가 생각보다 멀게 잡히면서 부모의 걱정은 깊어만 갔습니다. 저는 즉시 성모님께 안드레아와 그 가족을 온전히 맡겨드리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절함이 닿았는지 바로 다음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다행히 며칠 뒤 입원하여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섯 살 무렵, 제 동생도 심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안드레아의 부모를 보며 당시 제 부모님이 겪으셨을 고통이 떠올라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와 의료진 사이의 소통을 완벽히 돕는 일뿐이라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안드레아가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뒤에도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네 살 된 첫째 딸은 병실 출입이 불가능했기에, 부모는 번갈아 가며 한 명은 병실에서 아기를 돌보고, 다른 한 명은 병원 근처 숙소에서 딸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2주간의 입원 기간 중 수술이나 중환자실 면회, 의료진과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할 때마다 저는 곁을 지키며 통역을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 부부가 함께 안드레아를 돌봐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이들이 첫째 딸을 맡길 곳이 없어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선뜻 아이를 봐주겠다고 나섰습니다. 통역사에서 어쩌다 보니 베이비시터가 된 셈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네 살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기교보다는 진심 어린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드레아의 입원 기간 중에 첫째 딸의 생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더니, 그제야 아이 엄마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저의 직업은 통역사이지만, 저는 이 일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제 삶에서 받은 그 큰 사랑을 제게 주어진 일을 통해 되돌려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응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안드레아는 무사히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근처 성당에서 만나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따뜻한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밤, 부산으로 돌아간 부모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우연히 만났지만, 그 순간부터 당신은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통역사로서 곁을 지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전문적인 업무 능력은 물론, 모든 행동에 담긴 진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당신이 없었다면 서울에서의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신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도 결국 남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요. 이런 소중한 소명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