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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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화해로 이끈 ‘은수자 성인’ 삶 간직한 평화의 순례지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81. 스위스 작셀른 순례 성당과 플뤼엘리-란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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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넨 호숫가의 작셀른 순례 성당. 성 테오둘에게 봉헌된 마을 본당이자 성 니콜라오 데 플뤼에의 유해를 모신 스위스 대표 순례지. 순례자가 늘자 마을 공동체가 1672~1684년 지금의 성당을 새롭게 세워 성인의 유해를 옮겨 모셨다. 성당 밖 옛 종탑의 성인이 처음 묻혔던 장소에 무덤 소성당이 있다.


스위스는 중립국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적대하는 국가들이 마주 앉는 회담의 무대, 국제기구가 자리한 호숫가 평화의 공간. 그러나 중립국은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정학적 이점뿐 아니라, 외부 압력 앞에서 버틸 내부 결속력과 자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중세 스위스는 오늘날처럼 중앙 정부를 갖춘 단단한 연방이 아니었습니다. 도시와 농촌 공동체로 결성된 느슨한 동맹체였고, 내부 갈등으로 연방 자체가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열의 위기를 넘어 유럽의 강자로 부상하게 된 과정에는 한 평신도 은수자의 기억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순례지는 스위스의 일치와 평화를 이끈 성인의 발자취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스위스 산티아고 길이 지나는 곳으로 해마다 10만 명이 넘는 이가 찾아오는 순례지입니다.

 
작셀른 순례 성당의 주 제대와 본랑. 초기 바로크 양식 홀 성당으로 많은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한 공간을 구성했다. 2층 회랑과 반복되는 아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로지아가 떠오르게 한다. 주 제대 중앙의 성모 승천화는 1881년 파울 폰 데슈반덴과 게오르크 카이저의 작품이다. 1976년에 제작된 중앙의 독립 제대에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중세 스위스 분열 막은 은수자의 조언

루체른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면, 저 멀리 창밖으로 필라투스 산과 목초지가 잠시 펼쳐지다가 곧 자르넨 호숫가 마을 작셀른에 도착합니다. 마을 한가운데, 검은 양파 모양의 지붕을 한 소박한 순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순례 성당은 흰 벽면과 검은 석회암 기둥이 만드는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독일 남부 바로크 성당처럼 화려한 공간은 아니지만, 본랑과 측랑, 이층 회랑으로 이뤄져 성당 안에 또 하나의 성당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성당 중앙에는 성 니콜라오 데 플뤼에의 성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클라우스 형제’라 불리는 성인입니다.

클라우스 형제의 이름이 스위스 역사에 등장한 건 1481년 12월, 스위스 슈탄스 회의였습니다. 당시 구 스위스 연방은 부르고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직후였습니다. 그러나 전리품과 영토, 프리부르와 졸로투른의 연방 가입 문제를 두고 취리히·베른·루체른 같은 도시 칸톤과 우리·슈비츠·운터발덴 같은 농촌 칸톤이 크게 충돌했습니다.

회의가 파행을 거듭하자, 한 사제가 란프트 계곡의 은수자 클라우스 형제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사제가 회의장에 전한 메시지가 정확한 문장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이를 계기로 스위스 역사상 가장 극적 반전인 ‘슈탄스 협약(1481)’을 타결하며 평화를 맞이합니다.

 
클라우스 형제의 은수처와 소성당들. 오른쪽의 흰 건물(위 란프트 소성당) 옆의 오두막이 클라우스 형제가 1467년부터 20년 동안 살았던 은수처이다. 이 자리는 16세 때 체험한 환시에서 본 탑이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왼쪽 아래 개울 가까이에 보이는 흰 건물은 순례자가 늘어나자 1501년에 세운 아래 란프트 소성당으로 2020년 12월부터 베들레헴 주님 탄생 성당에서 전해진 평화의 빛이 연중 타오르고 있다.


평범한 농부 가장에서 성덕 이룬 은수자로

성인이 살았던 플뤼엘리-란프트는 작셀른에서 버스로 10여 분 오르면 닿는 산골 마을입니다. 정류장에 내리면 언덕 위의 플뤼엘리 소성당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인의 고향이 순례지로 자리 잡은 뒤 세워진 마을 성당으로 주변에 성인의 생가와 가족 주택, 은수처가 있습니다.

은수자에게 가족이? 클라우스 형제는 처음부터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도로테아 비스와 혼인해 다섯 아들과 다섯 딸을 둔 농부였고, 지역 공동체의 신망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50세가 되던 1467년 10월, 가족의 동의를 얻어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길 위에서 환시를 체험하고 돌아와서는 집 근처 계곡에서 20년간 성체 외에는 금식하며 은수 생활을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절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농민부터 외국 사절까지 찾아와 그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으면서도 공동체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가 성인으로 공경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과 노동, 지역 공동체를 살아낸 50년의 삶과 은수자로 산 20년의 삶과 성체 신심이 함께 그의 성덕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세상과 새롭게 관계 맺는 법을 보여 준 평신도 은수자였던 겁니다.

 
플뤼엘리 성 가를로 보르메오 소성당. 순례자가 늘어나면서 17세기 초 바위 언덕 위에 새로 세운 성당이다. 작셀른 순례 성당, 성인 박물관, 플뤼엘리의 성인 생가와 니콜라우스·도로테아 가족 주택, 란프트 은수처로 이어지는 도보 순례길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전쟁 위협에서 국민들이 전구 청한 성인

가족 주택 뒤편의 가파른 골짜기로 10여 분 내려가면 흰 소성당과 갈색 목조 은수처가 나타납니다. 계곡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마련해준 은수처와 소성당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1501년에 지은 또 다른 소성당이 나옵니다. 내부 벽화에는 성인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수난이 그려져 있고, 성인의 전구로 스위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대형 봉헌화도 보입니다. 전쟁 직전, 나치 독일의 위협에서 스위스 국민은 다시 성인의 전구를 청했는데, 많은 이가 란프트 계곡 위로 스위스를 보호하는 영적 구름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선종 직후부터 성인처럼 공경받았지만, 정식 시성은 1947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때, 스위스는 평화와 절제의 성인이자 나라를 구한 국부를 공식으로 모시게 된 겁니다.


하느님 향하며 세상에 열린 두 개의 창

스위스는 오래도록 클라우스 형제의 평화 메시지를 기억해 왔습니다. 울타리를 너무 넓히지 말고, 남의 싸움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며, 공동체의 평화를 잃지 말 것. 그의 평화는 갈등을 피하는 침묵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제한하고,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세우는 적극적인 절제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종교의 벽을 넘어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은수처에는 두 창이 나 있습니다. 하나는 제대, 곧 하느님을 향해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 길,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오는 이들을 향해 나 있습니다. 그의 은수는 세상을 단순히 등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느님 앞에서 세상과 새롭게 관계 맺는 방식이었습니다. 은수처의 좁은 창 앞에서 우리 삶에도 그런 두 방향의 열림이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순례 팁>

※ 루체른에서 작셀른까지 기차 이동(약 20분), 작셀른에서 플뤼엘리-란프트까지 버스 351번 이용(약 15분).

※ 작셀른 순례 성당 미사: 주일 및 대축일 10:15, 평일 09:15, 11:00(목), 18:00 (수) / 플뤼엘리 소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소성당에서도 미사가 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차윤석 박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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