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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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서해 물길 따라… 백령도에서 되새기는 김대건 신부 발자취

김대건 신부님의 바닷길, 백령도 순교신심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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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에서 바라본 서해 바다.
 
백령도본당 가을리공소.


“거기(황해도 순위도)서부터 우리는 항해를 계속하여 소강과 마합, 터진목, 소청, 대청 섬들을 돌아 백령도 근처에 정박했습니다. 이 장소는 중국인들의 중개를 조심히 이용한다면 선교사들을 입국시키고 편지를 전달하는 데 매우 유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6년 8월 26일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서 이렇게 보고했다. 한국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인 그해 5월, 김 신부는 페레올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를 찾고자 서해로 나섰다. 임무를 완수하고 순위도로 돌아갔다가 관헌에게 체포된 김 신부는 배교를 거부했고, 넉 달 뒤인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김 신부의 바닷길 개척 이후 1880년까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백령도 앞바다를 거쳤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그 역사를 기리고자 베네딕토 15세 교황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 반포 100주년인 2019년 3월 19일 백령도성당을 ‘순교 신심 순례지’로 선포했다. 정 주교는 사목 서한에서 “선교사 19명이 입국을 위해 백령도와 인연을 맺었으며, 그중 7명이 성인품에 올랐다”고 밝혔다.

인천관광공사는 최근 인천교구 등과 협력해 ‘김대건 신부님의 바닷길, 백령도 순교신심순례’ 프로그램을 기획, 출시했다. 이에 본지는 6월 15~17일 진행된 팸투어로 동행 취재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 30분. 성 김대건 신부가 열고자 했던 바닷길 끝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바로 남쪽 백령도의 순례길이 시작됐다.흰 깃털 섬, 백령도 순례의 출발점은 백령도 동북부 진촌리에 자리한 인천교구 백령도성당(주임 김학신 신부)이다. 1959년 5월 9일 설립된 섬의 유일한 본당이다. 1961년 완공된 성당은 ‘흰 깃털(白翎)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흰 외관이 인상적이다. 내부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 성해가 안치돼 있다. 마당에는 김대건 신부상과 본당 주보인 성 야고보 사도상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야고보 사도는 순례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순례자 부부가 인천교구 백령도성당 십자가의길을 걸으며 기도하고 있다.


‘백령도 순례길’은 백령도성당에서 시작해 섬 둘레를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전체 코스는 성당을 비롯해 소속 10개 공소(관창동·신화동·가을리·두무진·연화리·소가을리·장촌·화동·사곶·용기포)로 구성된다. 대한민국 서해 최북단, 면적 51㎢에 불과한 이 섬에 이렇게 많은 주님의 집 공소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마다 자리한 공소들은 저마다 다른 외관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섬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박하면서도 깊은 신앙을 느낄 수 있다. 성당 사무실에서는 이들 11개 순례지 전경 그림으로 제작한 키링(열쇠고리)을 판매하고 있다.

각 순례지를 잇는 10개 길은 차례로 브뤼기에르·앵베르·페레올·베르뇌 주교길과 오메트르·위앵·볼리외·도리·브르트니에르·김대건 사제길이라고 명명됐다. 초기 조선대목구장 주교들과 백령도 앞바다를 통한 조선 입국로와 관련된 사제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백령도성당 제대에 안치된 김대건 신부 성해.



초대 조선대목구장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는 뭍길을 통한 조선 입국을 앞두고 내몽골 마가자에서 선종했으나, 바닷길에도 상당한 관심을 뒀다. 이후 조선 땅을 밟은 첫 주교인 제2대 조선대목구장 성 앵베르 주교는 만주에서 책문(변문)을 지나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다. 그 후에 그는 바닷길을 통한 조선 입국을 적극적으로 모색했고, 후임자에게도 개척을 당부했다. 1839년 기해박해 이후 감시가 강화되며 기존 입국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바닷길 개척은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 바닷길을 향한 두 주교의 의지는 김대건 신부의 서해 항해로 이어졌다.

백령도성당과 모든 공소에는 순례자들의 묵상을 위한 ‘오디오 안내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인천관광공사가 인천교구·인천가톨릭대학교와 함께 개발한 것으로, 안내판 버튼을 누르면 묵상을 돕는 음성이 재생된다. 순례자들은 순례지마다 도장을 찍는 스탬프 투어도 즐길 수 있다. 인천 여행 앱 ‘인천e지’를 활용해 온라인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각 장소에 담긴 신앙적·교회사적 의미를 실감하도록 돕는 장치다.
백령도 신앙 공동체는 김 신부의 항해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1940년대, 황해도 장연에서 바다를 건너온 신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1958년 서울대목구 윤을수 신부가 백령도에서 처음으로 세례성사를 베풀었고, 자신이 설립한 인보성체수도회 수녀들을 파견했다. 그해 서울대목구에 속한 인천 지역은 인천감목대리구로 설정돼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위임됐다. 이에 미 공군 군종 신부로 재직하며 백령도 기지를 왕래하던 에드워드 J. 모펫(한국명 부영발) 신부는 선교를 자청, 1959년부터 1973년까지 백령도본당 초대 주임을 지냈다.



 
묵상 오디오 안내 시스템 기기


섬 안에 흐르는 신앙

백령도 10개 공소 중 신화동·가을리·연화리공소 등 3곳은 윤을수신부와 인보성체수도회 수녀들의 전교 활동과 관련이 깊다. 나머지 공소들은 모펫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활동 속에서 자리 잡았다. 6·25전쟁 정전 후 이북 출신 피란민으로 가득 찬 백령도에서 그는 교회 기반을 세우고 국제 원조도 이끌어내 주민들에게 식량과 어선을 지원했다. 화동공소와 신화동공소에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1969년 11월 29일 자로 모펫 신부와 공소 공동체에 보낸 강복장이 액자에 걸려 있다.

시간이 흐르며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신자 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공소에서는 공동체의 숨결이 이어지고 있다. 사곶공소와 신화동공소에서는 레지오 마리애가 활동하고 있다. 다른 공소 신자들도 백령도성당 미사에 참여하며 가톨릭교회와의 일치를 아름답게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7일 임명된 유준남(바오로, 64) 두무진공소 회장 역시 공소를 깨끗이 관리하며 대대로 이어진 신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령도 심청각에서 바라본 월내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중국 배를 타고 와 조선 배로 갈아타기로 한 약속장소인 ‘메린도’로 비정된다.


‘백령도 순례길’ 11개 순례지 외에도 가톨릭 신자에게 뜻깊은 장소가 있다. 「심청전」의 배경으로 전해지는 인당수가 내려다보이는 심청각이다. 백령도성당에서 북쪽으로 1.4㎞ 떨어진 이곳에 서면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북한이 점유하고 있는 월내도(月乃島)다.

월내도는 선교사들이 중국 배를 타고 백령도 앞바다에 이른 뒤, 조선 배로 갈아타기 위해 정한 약속 장소였다. 성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당시 선교사들의 기록에는 ‘메린도’, ‘멜린도’, ‘모린도’ 등으로도 나타난다. 기록들은 이 섬을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무인도이자, 중국 어선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 설명한다. 1866년 병인박해로 순교한 성 볼리외(서몰례) 신부를 문초한 포도청 기록에도 “백령 인근 모인도(毛仁島)에 상륙했다”는 구절이 있다.

메린도를 월내도로 보는 근거도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달레 신부가 1874년 펴낸 「한국천주교회사」에 수록한 한반도 지도에는 월내도 위치에 메린도가 표시돼 있다. 훗날 제8대 조선대목구장이 되는 뮈텔 신부도 1880년 메린도를 거쳐 조선 입국을 시도한 바 있다. 1930년 뮈텔 대주교는 메린도 위치를 묻는 일본 학자 야마구치 마사유키의 편지에 “지도를 보니 메린도 위치에 월내도가 자리한다. 그 섬이 메린도일 것”이라고 답장했다. 조선 관변 기록 「해서문첩록」에도 월내도 바깥 해상에서 중국 배를 찾아 김대건 신부의 편지와 지도를 입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됐지만, 앞선 우리 신앙 선조들이 복음을 전하고자 문을 두드린 역사가 서린 땅이다. 백령도 앞바다는 지금도 묵묵히 자신이 품은 작은 섬들이 지닌 우리 신앙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 팸투어에 참여한 신인철(스테파노, 수원교구 기산본당) 전 전국도보순례단장은 “순례하는 동안 마치 김대건 신부님의 여정을 따라가는 심정이었다”며 “백령도 도보 순례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한 유순엽(요셉, 인천교구 인천가톨릭대학교 한국순교성인본당)씨는 “백령도 신자들의 신앙심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다”며 “교구민들에게 백령도 순례를 널리 알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건 신부님의 바닷길, 백령도 순교신심순례’는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신청은 연평여행사 홈페이지(http://www.yptour.co.kr)에서 할 수 있다. 문의 : 032-889-1911, 연평여행사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인천교구 오상민 신부
“신앙 선조들의 열정 느끼고 배워가길”

“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생기고,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게 된다면, 백령도는 ‘죽어가는 섬’이 아니라 지쳐 있는 육지 사람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공간이 될 겁니다.”

2박 3일 백령도 순교신심순례를 마친 오상민(인천교구) 신부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오 신부는 인천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겸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앵커)’ 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인천광역시 ‘앵커’ 사업 선정 대학인 인천가톨릭대는 백령도의 문화적·역사적 자산의 가치를 보전하고자 섬 이야기 발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오 신부는 2015~2020년 백령도본당 제21대 주임을 지내며, 5년간 ‘섬 주민’으로 산 경험이 있다. 그런 그에게 백령도 공소 10곳은 하나같이 각별하다. 그래서 공소를 활용해 한국 교회의 태동기부터 백령도에 복음이 전파된 과정을 그려낸다는 구상이다. 순교신심순례를 통해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필두로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한국 교회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역사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소마다 테마를 정하고 기념관을 꾸릴 계획이다.

“백령도는 바닷길을 통해 선교사들을 조선으로 불러들이고자 했던 신앙의 열망이 드러난 관문입니다.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선교사들과 교우들의 열정을 느끼고 배워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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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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