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Hospitality), 세계를 연결하는 첫 번째 언어’를 주제로 7월 2일 서강대에서 열린 ‘GG(Great Geographic) 아카데미 2026 제1회 프로그램’에 함께한 참가자들이 이해인 수녀의 글귀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지리적 문해력 회복 위한 ‘GG 아카데미’
지리학 르네상스 100인 선언 계기로 출범
특정 학문 아닌 공공의 언어로 확장 목표
학자·청년·작가가 전한 ‘환대의 지리학’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간·열린 마음 강조
환대 선언으로 세계 향한 이해 확대 다짐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만의 행사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세계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 돼야 합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1년여 앞두고 지리학자와 순례 전문가, 청년 창작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종교도, 전공도, 세대도 달랐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던진 화두는 ‘환대’였다. 낯선 이를 이해하고 맞이하는 마음이야말로 성공적인 WYD의 출발점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GG(Great Geographic) 아카데미 2026 제1회 프로그램’이 7월 2일 서강대학교 정하상관에서 GGS(Great Geographic Society)와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공동주최로 열렸다. 주제는 ‘환대(Hospitality), 세계를 연결하는 첫 번째 언어’였다. 국내 최초 세계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고 김찬삼(토마스, 1926~2003) 선생의 기일에 맞춰 마련된 이 자리는 교회 안이 아닌 사회 곳곳의 비신자 전문가들이 세계청년대회의 의미를 함께 고민한 자리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환대(Hospitality), 세계를 연결하는 첫 번째 언어’를 주제로 2일 서강대에서 열린 ‘GG(Great Geographic) 아카데미 2026 제1회 프로그램’에서 초대 학술원장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세계·타인 읽는 역량 위해 시작된 아카데미
GG 아카데미는 한국 사회에 부족한 ‘지리적 문해력(Geographic Literacy)’을 회복하자는 문제의식에 공감한 이들이 머리를 맞대며 만들어졌다. 국가교육과정에서 지리 교육이 축소되면서 세계를 이해하고 타자를 읽어내는 힘도 함께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에서였다. GG 아카데미는 지리학을 단순한 교과목이 아니라 세계를 읽고 사람을 이해하며, 장소를 살리는 공공의 언어로 제안하는 교육 플랫폼이다.
지난 6월 5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지리학 르네상스 100인 선언’을 계기로 출범한 GG 아카데미는 지리학을 특정 학문의 영역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시민 모두가 함께 배우는 공공의 언어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후위기와 국제분쟁·인공지능·인구 이동 등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지리학적 상상력을 제안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그 첫 자리로 서강대가 선택됐다.
GG 아카데미 초대 학술원장을 맡은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스테파노) 교수는 환영사에서 “지리학이 땅만 연구하면 자연과학이 되겠지만,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에 인문학”이라며 “2017년 이후 지정학 경쟁이 본격화됐고, 지금처럼 국제 질서가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지리적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도를 보지 않으면 우리 곁에 다가온 위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지리적 문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GG 아카데미는 서강대를 시작으로 지리학과가 없는 대학으로 확대 운영될 예정이다.
김이재 교수가 '순례의 지리학: 2027 세계청년대회를 위하여'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해인글방과 순례길에서 발견한 환대
이번 행사를 기획한 문화지리학자 김이재 경인교육대학교 교수는 이날 ‘환대의 지리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 시작은 시인 이해인(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와의 인연에서 비롯한 ‘민들레영토’와 ‘해인글방’이었다.
“50여 년 전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이해인 수녀님은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 꽃을 피우는 곳을 ‘민들레 영토’라고 했습니다. 지리학자 입장에서 그 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경계를 긋는 영토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영토를 상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김 교수는 부산 광안리의 ‘해인글방’을 꾸준히 찾았다. “해인글방에 가는 일은 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존중과 환대를 받는 느낌을 얻습니다. 살아갈 힘이 생기죠. 수녀님을 통해 환대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최근 해인글방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포근한 안식처였던 곳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그는 지리학적 개념으로 공간을 잇는 경험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30년간 환대의 공간으로 기능한 해인글방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라 문학·순례·청년 멘토링·국제교류·디지털 아카이브가 함께 이뤄지는 살아있는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도시재생의 목적은 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시 머물고 싶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관악의 섬’을 제작한 서울대학교 학생 차승한씨가 경쟁 시스템 속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들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서울대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관악의 섬’을 제작한 서울대학교 학생 차승한(21)씨는 다큐를 촬영하며 경쟁 시스템 속에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들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서울대 학생들조차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했다”며 “등수와 건물의 평수는 계산할 수 있지만, 환대는 숫자로 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밀어내는 ‘섬’과 달리 해인글방처럼 사람을 불러들이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고립의 문제의식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차씨는 “종교를 떠나 심리적 고립으로 힘들어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2027 서울 WYD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길지 순례 작가가 유럽 2800㎞를 걸으며 만난 환대의 순간을 전하고 있다.
「그랑드 랑도네」를 쓴 김길지 순례 작가는 벨기에부터 프랑스,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2800㎞를 걸으며 만난 환대의 순간들을 전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숙소를 마련해주고 식사를 함께하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순례자를 맞아들였다. 어떤 도시는 순례자를 위해 숙박비를 지원했고, 공무원은 퇴근 시간을 넘겨 숙소를 찾아주며 다음날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줬다. 김 작가는 “순례는 결국 환대를 경험하는 여정”이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화려한 건축물이나 관광지가 아니라 타인을 향해 열린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의 엽서를 보내며 인연을 이어갔다. “여행은 끝났지만, 환대의 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할 겁니다.”
김이재 교수는 김 작가의 여정을 ‘순례의 지리학’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WYD를 앞둔 지금 유럽 순례 문화가 지닌 ‘이동과 환대의 지리학’이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길은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합니다. 유럽의 순례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환대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대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김이재 교수는 “WYD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청년 행사 가운데 하나”라며 “WYD를 가톨릭만의 행사로 생각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한 명이라도 온다면 그 사람의 나라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며 “저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WYD를 위한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함께 기원했다.
여러 국제 교류 행사를 경험한 김 교수는 학교와 교육청, 지역 사회가 함께 준비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WYD에 대한 교육을 올 2학기부터 모든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해 시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참가국을 미리 공부하고 한국 청년들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WYD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환대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며 “WYD는 세계 청년들을 맞이하는 행사인 동시에 우리가 세계를 배우는 기회도 된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행사 말미 선언한 ‘환대 선언’을 통해 그 가치를 하나의 목소리로 모았다.
“우리는 지도를 통해 세계를 배우고, 환대를 통해 세계와 연결된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이해하려 노력하며, 다른 문화와 종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