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하나를 누르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생사가 걸린 결정이라면, 그 버튼 앞에서 사람은 멈춘다. 손이 떨리고, 마음은 수백 번 오간다. 그것이 결단이다. 인공지능(AI)은 그 버튼을 찰나에 누를 수 있다. 그 속도는 탁월함이 아니라 ‘무게’를 모른다는 증거다.
오늘날 생성형 AI는 선택의 형식을 띤다. 추천 알고리즘은 무엇을 볼지 고르고, 의료 AI는 어떤 치료를 내놓을지를 판단한다. 이 과정을 우리는 습관처럼 선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최적화다. 데이터 안에서 오류가 가장 적은 답을 골라내는 작업일 뿐이다. AI의 선택에는 떨림이 없고, 망설임도 없으며, 이후의 무게도 없다. 선택은 틀릴 줄 알면서도 기꺼이 내리는 행위다. 최적화는 답을 고르지만, 결단은 삶을 건다.
벨기에와 프랑스 출신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2025년 4월, 사관생도들을 전장의 드론 조종사로 만들었다. 공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민간인 피해 위험이 도사린 상황에서 생도들은 AI의 권고와 함께, 때로는 홀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공격을 부추기는 AI, 공격을 만류하는 AI, 그리고 아무 말도 않는 조건.
결과는 선명했다. 생도들의 판단은 AI의 성향에 뚜렷하게 끌려갔다. 더 놀라운 것은, AI와 함께할수록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결정은 자신이 내렸는데도 AI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결정이 아닌 것 같다’는 감각이 생겨났다. 내가 결정했지만 내가 결정한 것 같지 않다. AI가 책임을 가져간 것도 아닌데, 내 책임감은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이것은 전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느 길로 갈지, 무엇을 살지. 그 작은 결정들이 하나씩 알고리즘에 넘어갈수록, 결단하는 힘은 오랜 시간 벼리지 않은 칼처럼 무뎌진다. 전쟁터의 사관생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 조금씩 결단을 반납하고 있다.
AI는 선택하지 않는다. 계산한다. 어떤 답을 내놓아도 그 결과를 감당하지 않는다. 틀려도 괴롭지 않고, 옳아도 안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결단은 다르다. 선택했다는 것은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진다는 뜻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것이 내 선택이었음을 인정하고, 그 무게를 기꺼이 지는 것. 그것이 결단이다. AI에게 선택을 넘길수록 책임도 함께 흩어진다. 결과가 좋으면 내 덕, 나쁘면 AI 탓. 그렇게 책임의 언어가 우리 삶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결단의 본질은 정확성이 아니라 감당이다. 누구를 사랑할지, 무엇을 위해 살지, 어느 길을 걷겠는지. 이 물음들은 데이터가 대신 답해 줄 수 없다. 그 자리에 AI를 앉혀 두는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포기다. AI는 효율을 줄 수 있지만, 의미는 줄 수 없다. 결단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서명하는 방식이다. 그 서명을 알고리즘에 넘기는 순간, 삶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의 마지막 결단, 그것은 온전히 당신이 진 무게였는가.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