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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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조금만 돌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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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요원을요? 절대 안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전후 복구 본부장에게 단호한 답장이 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입사 몇 달 차, 현장 경험 전혀 없는 햇병아리에게 그런 중차대한 현장 파견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월드비전 한국은 나를 보내야 했다.

한국 정부의 첫 긴급구호 자금이 투입되는 곳이고 여행가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변신한 내 첫 파견에 언론의 관심도 커서, 현장을 알리고 국민적 모금을 이끌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48시간 이내에 꾸려지는 선발대에 반드시 합류해야 한다.

“한비야 팀장을 위해 집중기도 부탁합니다.”

거절 메일을 받자마자 월드비전 회장은 전 직원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이어 이례적으로 국제 월드비전 총재에게 직접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재검토를 부탁했다. 나 역시,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인 월드비전에서 우려와 반발에도 가톨릭 신자인 나를 발탁한 회장님의 선택이 옳았음을 이번 파견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두려웠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새내기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심정이었다. 급하면 기도밖에 없다던가? 파견 논의가 오가던 며칠간 내 평생 가장 뜨겁게 기도했다. 시간만 나면 화살기도를 쏘아 올렸다.

“하느님, 저를 보내주세요. 꼭이요.” 밤이면 고상 앞에 촛불을 켜고 무릎 꿇고는 떼쓰듯 기도하는 ‘떼쟁이 기도’를 드렸다. “보내만 주세요. 젖 먹던 힘까지 다하겠습니다.”

가까운 분들에게 부지런히 기도 부탁도 했다. 이웃 교우에게도 알렸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5살 지영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도 하느님께 기도할게요. 이제 저는 조금만 돌봐주시고,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세요.”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2002년 2월, 마침내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았다. 놀랍게도 파견지는 난민촌 여자아이가 빵을 건넸던 헤라트였다.

약식 안전교육 후 식량 지원팀에 배치되어 처음 찾은 산악 마을은 참혹했다. 전쟁과 가뭄으로 7년째 농사를 짓지 못해 주민들은 풀로 연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즉각 2000가구에 식량을 배분하는 한편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20여 명의 아이들을 데려와 두 시간마다 치료용 죽을 먹였다.

2주쯤 지나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눈이 마주치면 웃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먹은 죽을 번번이 토하는 압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헤라트 본부로 돌아가는 날 아침, 압둘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바르르 떠는 손은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발 직전, 압둘을 안고 마지막 죽을 떠먹이며 말했다. “압둘, 넌 살 수 있어. 아니, 꼭 살아야 해.”

그러자 아이는 내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더니 작은 앞니로 힘껏 깨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 이렇게 힘세요. 꼭 살아날게요”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하느님은 옆집 꼬마 천사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다. “저는 조금만 돌봐주시고, 아프간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세요!”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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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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