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선교사 제 길 아니면
중병 주세요’ 기도했지만 건강”
“학생들이 교사됐을 때 큰 보람”
살레시오수녀회 아프리카 적도중앙관구(성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관구) 평의원으로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정진숙(체칠리아) 수녀를 2일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수녀회 한국관구관에서 만났다. 올해 첫서원 40주년을 맞아 특별휴가차 한국을 찾은 정 수녀는 “수도생활 40년 가운데 36년을 해외에서, 대부분은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보냈다”며 “지금은 가봉·카메룬·차드·콩고공화국·적도기니 등 적도중앙관구 다섯 나라를 오가며 공동체와 여러 프로젝트를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 수녀는 1981년 11월 입회해 1986년 1월 첫서원을 했다. 당시 수녀회에선 에티오피아로 첫 선교사를 파견하며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학창 시절 영어를 싫어해 “나는 한국에서만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아프리카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아프리카 선교를 자원한 그는 1990년 1월 한국을 떠나 로마에서 선교사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1992년 벨기에에서 종신서원을 한 뒤 아프리카로 향했다.
‘교육하면서 복음화하고, 복음화하면서 교육하는 살레시오수녀회’ 정신에 따라 정 수녀는 직업학교로 파견됐다. 한국을 떠나기 전 급히 재단사 자격증도 땄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고 손이 빠른 그에게 꼭 맞는 소임이었다. 정 수녀는 현지 여학생들에게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해 옷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 미혼모,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여학생들에게 재봉 기술은 곧 삶의 기술이었다.
“천을 잘라 박을 줄만 알면 집에서도 일할 수 있어요. 가족들 옷도 만들고, 시장에 팔 수도 있죠. 어린 여학생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직업학교에서 바느질과 수놓기를 배웠던 학생들이 훗날 교사가 돼 학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가 그에겐 가장 큰 보람이었다. 정 수녀의 반주를 듣고 악보도 없이 키보드를 배웠던 한 아이는 본당에서 청년 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 수녀는 “제가 뿌린 작은 씨앗이 이렇게 자라는구나 싶었다”면서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했다.
현재 정 수녀는 다섯 나라 공동체를 돌며 학교와 기숙사, 교육시설, 장애 학생 교실, 울타리 공사 등 각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살피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봉에서는 학부모들이 오래전부터 중고등학교 설립을 요청해왔다.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흩어지지 않고 살레시오 교육 안에서 계속 자라게 해달라는 바람 때문이었다. 적도기니에서는 장애 학생들이 머물 교실이 필요했고, 차드에서는 학교와 사목시설을 세울 땅에 울타리를 둘러야 했다.
“어느 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사업이 없어요. 자금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된 곳도 많아요. 늘 더 도와주지 못해 안타깝죠.”
다섯 나라를 이동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육로로 이동한다. 카메룬과 차드를 오갈 때는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이틀에 걸쳐 이동하는데, 하루 종일 버스를 타는 날이면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작은 물병 하나만 들고 목이 마를 때면 입술만 축인다. “휴게소나 화장실이 없으니 급한 볼일은 길가에서 해결하라고 하는데, 그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정 수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선교사 생활이 늘 웃음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모기와 벌레떼에 숱하게 물렸고, 말라리아에도 여러 번 걸렸다. 여러 나라 출신 수도자들과 살며 언어와 문화 차이로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 정 수녀는 “실망하고 화날 때가 왜 없겠느냐”면서도 “수도생활을 하면서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걸 배웠고, 내가 먼저 말을 걸며 관계를 풀어나가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큰 탈 없이 30년 넘게 아프리카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사실 저도 선교사가 제 길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말씀드렸죠. ‘선교사가 제 길이 아니면 중병을 내려 알아차리게 해주세요’라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걸 보면,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길을 따라 잘 가고 있는 거겠죠?”(웃음)
정 수녀는 “관구 평의원 임기를 마치면 차드에서 지내고 싶기도 하지만, 제가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부르시는 곳으로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