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지난주 새벽, 갑자기 자동차 앞유리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기다리던 비였건만,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여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도로 위에서는 반가움보다 재난에 대한 긴장과 염려가 앞섰다. 운전대를 잡은 기사님께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이제 비가 오지 않아도 생존을 걱정하고, 너무 많이 와도 재앙을 두려워하는 역설의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은 절약해야 할 생활자원으로 인식되었다. 양치할 때 수도꼭지를 잠그고, 설거지 물을 받아 쓰며, 빗물을 모아 활용하는 작은 실천을 환경교육 현장에서 강조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물의 의미와 가치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청정에너지 산업은 막대한 전기와 함께 안정적인 용수를 필요로 한다. 기후위기와 첨단산업의 시대는 물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물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과제가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 물은 더 이상 단순한 환경자원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산업을 지탱하는 국가 전략자원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물 정책은 단기적인 논쟁이나 정권의 변화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와 산업구조의 전환을 함께 내다보며, 축적된 경험과 과학적 근거 위에 지속성과 일관성을 갖춘 물 관리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 그 위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물순환과 홍수·가뭄 대응 체계를 촘촘히 갖추고, 기업은 물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기술과 경영을 실천해야 하며, 시민사회는 미래세대가 물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인지해야 할 물의 위기는 담수를 넘어 거대한 해양으로 확장되고 있다. 육지에서 무분별하게 쓰이고 버려진 오염물질과 미세 플라스틱은 강물을 따라 결국 우리 공동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이 심화하면서 해양 생태계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지구의 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돌고 도는 순환체이기에, 내 집 주방과 공장에서 흘려보낸 오염수는 고스란히 바다의 비극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30년 ‘UN 지속 가능한 발전목표’ 달성을 2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2028년 제4차 UN 해양총회는 새로운 해양 협력의 틀을 정립할 거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에 발맞춰 필자가 몸담고 있는 환경단체 에코나우 역시 올해 UN 청소년 환경총회의 공식 의제를 ‘기후위기와 물’로 정했다. 18개국 300여 명의 청소년은 토론과 협력을 통해 물을 환경 문제를 넘어 생명과 산업, 바다와 미래를 연결하는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게 될 것이다. 미래세대가 물을 새로이 배우는 것은 곧 다가올 인류의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며칠 전 제습기 속 물통을 비우다 문득 손이 멈췄다. 단 하루 만에 가득 찬 5ℓ가량의 맑은 물을 보며, 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곁을 채우고 있던 존재의 무게를 새삼 깨달았다. 그 물을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내려다 베란다 청소에 활용하자고 따로 모아두며 생각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본질은 단순히 물을 ‘절약’하는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물 한 방울까지도 경외함으로 대하는 ‘태도’의 회복이다.
기후위기와 첨단산업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이제 우리는 강과 바다, 그리고 이 지구에서 살아나갈 나와 다음 세대를 위해 물을 겸손하게 다시 배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