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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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동의 어느 ‘성당’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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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성당에 가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봄날, 아버지와 남동생, 나는 서울 효창동 친척 집에 가는 길에 어느 성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들어가 보자고 하셨다. 호기심에 따라 들어간 성당 마당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예쁜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평일 성당은 고요했고,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그 당시는 혹독한 독재 시대였다. 일간 신문 정치부 기자였던 아버지는 반정부 기사로 인해 필화를 겪으며 여러 차례 수감과 고문을 당하셨다. 그날 이후 부모님 대화에 ‘미사’, ‘교리공부’, ‘세례’ 같은 낯선 단어가 들렸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49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당신의 바람대로 우리 가족은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각자의 선택으로 성당을 찾아 신자가 되었다. 주변에 인도해 줄 천주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어떻게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스스로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받았는지 생각할 때마다 불가사의하다. 나는 학교와 가까운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세례받고 학생회에 들어가 즐겁게 활동했다.

하지만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고 저절로 하느님과 깊이 만나는 건 아니었다. 신앙인의 기초인 성경 읽기와 기도하는 법을 알려준 곳은 뜻밖에도 내가 다니던 개신교 미션스쿨 숭의여고였다. 학교에선 성경 읽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매일 ‘오늘의 말씀’을 강제로 외웠고, 방학이면 성경 암송 대회를 위해 본인이 고른 상당한 분량의 성경을 통째로 암기해야 했다.

가톨릭 성경이 허락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3년 내내 개신교 성경으로 외웠는데, 놀랍게도 그때 외운 성경 구절이 아직도 ‘툭’ 치면 곧바로 튀어나온다. 그 시절 성경 읽기가 몸에 배었는지, 지금까지 꾸준히 성경을 읽으며 ‘일 년에 일독하기’를 이어가고 있다.

또 하나는 자유로운 기도다. 정해진 기도문에 익숙한 가톨릭과는 달리, 학교에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외에는 상황에 맞는 ‘맞춤형 기도’를 했다. 반 예배 기도는 돌아가면서 했는데,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어찌나 청산유수인지 주눅이 들 지경이었다. 내 차례가 오면 전날부터 잔뜩 긴장해서 준비한 기도문을 달달 외워 겨우 마치곤 했다.

그러나 그런 훈련 덕분에 나는 여전히 아침, 저녁기도 때 가톨릭 신자답지 않게(!) 큰소리로 자유롭게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용서와 자비를 청한다. 크고 작은 행사에서 성경 말씀을 곁들여 대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때 얻은 보너스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신앙의 유아기에 억지로 익힌 성경 읽기와 기도 습관이 평생 내 믿음의 든든한 뿌리가 되고 있다.

돌이켜보니, 생고생시킨다며 미워했던 여고 시절의 교목, 담임, 교장 선생님이 고맙기 짝이 없다. 그분들은 내 신앙의 훌륭한 조련사였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성당으로 이끌어 준, 내 신앙의 시작인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세례는커녕 대세조차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어린 셋째 딸이 무럭무럭 자라서 이렇게 100년 전통의 가톨릭신문에 연재까지 하는 걸 보며 흐뭇해하실 거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에게, 이 글을 바친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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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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