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지방의 로카마두르 성모 성지. 도르도뉴강의 지류인 알주강이 석회암 고원을 깊숙이 깎아 만든 협곡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위로 솟은 150m 절벽 위에 성지 방어용 성이 자리하고, 중턱 바위 그늘에 성지가 들어서 있다. 중세에는 튈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성지를 관리했지만, 현재 카오르교구가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2026년부터는 살레트의 성모 수녀회 공동체가 상주하며 사목을 돕고 있다.
중세의 순례자는 요즘처럼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목적지까지 여정도, 숙소도 불확실했으며, 전쟁과 도적, 질병과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순례는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며 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는 처절한 신앙 행위였습니다.
자발적인 순례도 많았지만, 교회가 고해와 공개 참회의 보속으로 순례를 명하기도 했습니다. 13세기 이후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네덜란드 지방에서는 세속 법정도 순례를 형벌과 화해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사법 순례’라고 부르는데 순례자는 떠날 때 법정에 신고하고, 돌아와서는 성지의 순례 배지를 증거로 제시해야 했습니다. 목적지는 죄의 경중에 따라 거리와 비용, 여행의 위험, 관습을 고려해 정해졌고, 가까운 성지는 가벼운 죄, 로마처럼 멀고 유명한 성지는 무거운 죄를 지은 이들에게 배정되기도 했죠.
오늘 순례는 중세에 로마·산티아고에 버금갔던 로카마두르 성지입니다. 죄인들의 보속처였을 뿐 아니라 성 도미니코, 성 안토니오 등 성인들과 여러 국왕이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러 찾았던 순례지입니다.
성지 마당에서 바라본 로카마두르 성지. 중앙의 노트르담 소성당에는 검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으며, 오른쪽 계단 위의 큰 출입문은 생소뵈르 바실리카로 이어진다. 바실리카 아래를 한때 성 아마둘의 유해를 모셨던 생아마두르 소성당이 떠받치고 있다. 뒤의 절벽에는 롤랑이 롱스보 전투에서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던졌다는 성검 ‘뒤랑달’이 꽂혀 있었으나 2024년 도난당했다.
깊은 협곡에 자리한 천 년의 순례지
로카마두르는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지방의 절벽 마을입니다. 지금은 인근에 기차역이 있습니다만, 석회암 고원의 깊은 협곡에 자리해 대중교통 접근이 여의찮습니다.
이곳의 순례 역사는 1000년이 넘습니다. 1105년과 1115년 파스칼 2세 교황 교서에 ‘로카마두르 노트르담’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12세기 초부터 죄의 용서와 성모의 전구를 청하러 찾아온 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순례자들은 보속의 표시로 목에 걸었던 작은 쇠사슬을 노트르담 소성당 제대에 봉헌하곤 했습니다.
1166년 노트르담 소성당 근처에서 부패하지 않은 시신이 담긴 고대 무덤이 발견되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 시신이 성 아마둘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이곳은 ‘성 아마둘의 바위’를 뜻하는 로카마두르로 불리게 됩니다. 이후 노트르담 소성당은 프랑스에서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순례지가 됐고, 그 자체로 훌륭한 순례 목적지가 됐습니다.
사실 성 아마둘이 누군지는 설이 분분합니다. 1180년 몽생미셸 수도원 연대기 작가에 따르면, 성인이 성모 마리아를 가까이에서 시중들고 어린 예수를 돌본 인물로, 성모 승천 후 갈리아로 건너와 은수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성 베로니카의 남편으로 박해를 피해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15세기부터는 세관장 자캐오가 회개 후 이름을 바꿔서 이곳에서 은수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곳은 회개의 순례지로 더욱 굳건히 자리 잡습니다.
생소뵈르 바실리카의 주 제대(위), 2층 회랑(아래). 구세주에게 봉헌된 11~13세기의 성당으로 좁은 절벽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두 개의 신랑을 나란히 배치했다. 늘어나는 순례자를 위해 19세기에 2층 목조 회랑을 설치했다. 1913년 성 비오 10세 교황이 준대성전으로 지정했다. 주 제대의 중앙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어린양을 어깨에 멘 ‘착한 목자 그리스도’가, 제대 정면 금빛 부조에는 성모 승천이 표현돼 있다. 중앙 석주 뒤로 2013년 설치된 뱃머리 모양의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아마둘 성인’의 시신 모셔진 바실리카
우리 순례는 동네 어귀에서 시작합니다. ‘성스러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중세 도시의 성문과 좁은 골목이 이어집니다. 마을은 150m 높이의 가파른 절벽과 평행하게 난 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됐는데, 순례자를 상대로 한 숙소와 기념품 가게가 즐비합니다. 마을 한가운데 오른편에 성지로 오르는 216개의 대계단이 나타납니다.
절벽 중턱 좁은 공간에 성당과 소성당들이 겹겹이 모여 있습니다. 가장 큰 건물은 11~13세기 건축된 생소뵈르 바실리카로, 생아마두르 소성당이 아래서 바실리카를 떠받치는 구조입니다. 바실리카 안에 들어서면 묵중한 돌벽이 만든 절제된 공간이 펼쳐집니다. 주 제대의 목조 구조 한가운데에는 착한 목자 그리스도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고, 한쪽에는 성 아마둘의 시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순례의 핵심은 바실리카 옆 노트르담 소성당의 검은 성모상입니다. 1476년 낙석으로 옛 소성당이 무너진 뒤 1479년 재건됐고, 19세기에 대대적으로 복원됐습니다. 성당 벽의 두 면이 자연 암벽 그대로여서, 검게 그을린 바위가 천장처럼 검은 성모상 앞에 선 순례자를 보듬습니다.
로카마두르 노트르담 소성당과 검은 성모상. 제대 중앙에는 12세기 호두나무로 만든 검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성모가 어린 예수를 무릎에 앉힌 ‘지혜의 옥좌’ 형식의 조각으로, 본래 채색되고 귀금속과 보석으로 덮였으나 약탈과 마모로 장식을 잃고 짙은 빛만 남았다. 천장에는 ‘기적의 종’이 걸려 있다.
위기에 놓인 이들 도우신 ‘바다의 별’ 성모
로카마두르의 성모는 ‘바다의 별’이자 선원들의 수호자로도 공경받습니다. 소성당에 매달린 배 모형과 여러 봉헌물이 그 신심을 증언합니다. 바실리카의 파이프오르간도 뱃머리를 구현한 겁니다. 그런데 바다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
1172년에 순례지를 조성·관리하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이곳에서 성모의 전구로 일어난 126건의 기적을 모아 「로카마두르 성모의 기적」을 편찬합니다. 책에는 유럽과 라틴 동방에서까지 찾아온 순례자들의 치유 기적뿐 아니라 바다에서 조난 당한 선원들이 기적처럼 구조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성당의 천장에는 오래된 종이 매달려 있습니다. 선원들이 로카마두르의 성모에게 도움을 청할 때 이 종이 저절로 울렸다고 합니다. 1536년에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도 캐나다 항해 중 혹독한 겨울과 괴혈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이곳 성모께 도움을 청했고, 귀환 후 로카마두르를 순례했다고 합니다. 이런 신심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단독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는 이들도 검은 성모자상을 배에 모시곤 하지요.
검은 성모상을 바라봅니다. 성모님은 심판자가 아니라 구세주께 우리를 이끄는 분이십니다. 참회는 자신을 벌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일로 시작됩니다. 중세의 사제가 순례자의 쇠사슬을 풀어주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회개의 마지막 모습은 속박이 아니라 해방입니다. 해방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은총에 깊은 믿음을 청해 봅니다.
<순례 팁>
※ 하절기 로카마두르–파디락 역 ↔ 성지 노선버스(liO 876) 운행. Bourg l’Hospitalet 정류장 하차 후 마을로 도보 이동(약 30분), Ascenseur Château 정류장 하차 후 엘리베이터 이용. 그 외 시즌에는 택시 이용.
※ 성지 미사: 매일 11:00(생소뵈르 바실리카), 하절기 매일 17:00(노트르담 소성당), 19:00(토, 로스피탈레 성당) / 매일 8:30, 18:00 기도와 순례자 축복.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