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무회의에서 낙태약물(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의 식약처 허용과 관계부처의 검토 가능성이 논의되며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약물의 국내 독점공급권을 가진 제약사는 지난 2021년과 2023년 품목허가를 신청했으나, 안전성 관련 보완 자료 미흡으로 이를 스스로 취하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허가 재취득을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논란 재발의 불을 지폈다.
이 약물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해 자궁내막을 탈락시키는 미페프리스톤과 자궁 수축을 유발하는 미소프로스톨의 병용으로 작용한다. 즉 자궁 안에서 자라나는 태아가 더 이상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도록 내막을 분리해 성장을 중단시킨 뒤, 강한 자궁 수축을 통해 분리된 내막 조직과 태아를 몸 밖으로 밀어내는 기전이다. 이처럼 낙태약물의 국내 도입은 단순한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 심사 차원을 넘어, 생명윤리와 사회적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민감한 문제다.
이 약물이 국제사회에 본격 등장한 배경에는 1980년대 저개발국의 높은 모성사망률 문제가 자리한다. 1985년 로젠필드와 메인이 “모자보건에서 ‘모성’은 어디 있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UN과 WHO는 모성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Safe Motherhood Initiative’와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추진했다. 당시 비위생적인 낙태가 저개발국 산모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자, WHO 산하 인간생식 특별연구프로그램(HRP)은 1990년부터 저렴하고 효과적인 낙태약물 연구를 주도했다. 2003년 기준 전 세계 낙태의 48가 안전하지 않게 이뤄지고 이 중 97가 개발도상국에 집중되자, WHO는 2005년 이 약물들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WHO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이 약물을 승인한 100여 개국 대다수는 방글라데시·네팔·나이지리아 등 보건의료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저개발 국가들이다.
반면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보건 과제는 이들 국가와 궤를 전혀 달리한다. 2015년 UN이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개발도상국의 모성·영유아 사망 감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는 만성질환 관리, 약물 오남용 예방, 저출생·고령화 대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한국이 이미 모성사망률을 큰 폭으로 낮춘 선진국형 보건체계를 갖췄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저개발국의 응급 대응책이었던 약물 도입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약물의 안전성은 단지 눈앞의 신체적 부작용이나 치명률 수치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과거 인류를 구한 기적의 약이었던 항생제가 오남용을 거쳐 오늘날 ‘조용한 팬데믹’이라 불리는 내성균 위기를 가져왔듯, 약물이 사회 전체의 인식과 윤리관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FDA도 과거 승인했던 낙태약물의 안전성 및 영향에 대한 검증 연구를 재개하는 등 약물의 파급력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임신은 치료하여 제거해야 할 질병이 아니며, 태아 역시 배척해야 할 병균이나 암 조직이 아니다. 헌법 제10조가 명시하듯 국가의 최우선 책무는 국민의 불가침적 기본권인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생명권을 지킬 명확한 법적·제도적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 판매를 허용하고 그 결정을 개인과 의료진의 재량에 내맡기는 것은 국가의 근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성과 태아의 건강 및 생명을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정부는 성급한 약물 허가에 앞서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 법적·사회적 안전망을 먼저 정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