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통번역가로 일하며 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랑의 문화’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혼인과 가정, 그리고 사랑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자연스럽게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2020년 3월,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했으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고, 동기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일상의 많은 제약으로 마음이 답답하던 즈음, 우연히 SNS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시는 김하종 신부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무료 급식소 운영이 어려워져 도시락 봉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에 두세 번씩 도시락을 싸고 나누는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원 소식지인 「생명마루」의 편집위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코너에 김하종 신부님을 추천해 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승낙해주실 뿐만 아니라 “이 기회에 대학원 원생들과 다 함께 봉사를 가자”며 먼저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편집위원들과 학우들이 모여 토요일 도시락 봉사를 다녀왔고, 봉사를 마친 뒤 신부님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감염병의 공포로 세상의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 가던 그 시기에도,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전하시는 신부님의 모습 속에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복음 말씀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비대면 수업으로 서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동기들이 봉사의 현장에서 만나 한마음으로 땀 흘리고 친교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서는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선(善)’을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강하게 확신하였습니다.
봉사를 마친 후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실천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면 좋겠다. 연구나 학업 동아리는 많지만, 학교에서 배운 생명존중과 사랑을 세상에 직접 실천하는 동아리는 없지 않으냐”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저희는 ‘서브아모르(이탈리아어로 사랑의 섬김)’라는 이름의 봉사 동아리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브아모르는 매달 한 번은 노숙인을 위한 안나의 집 급식소에서, 또 한 번은 안나의 집이 운영하는 중단기 청소년 쉼터에서 중식 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손수 정성껏 만든 음식을 나눌 때 밝게 웃어주는 아이들과 이웃들의 모습은 오히려 저희의 지친 마음을 씻어주고 커다란 위로를 안겨줍니다. “밥을 핑계로 청소년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세상에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김하종 신부님의 말씀은 저희가 이 봉사를 지속해나가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신비로운 안배였습니다. 단절의 시대에 만남을 선물해주셨고, 배움의 공간을 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장으로 저희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머리로 배우는 학문에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품어 손과 발로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과 생명 평가가 참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의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 하느님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전하는 작고 충실한 도구가 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