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 더위에 죽었니, 살았니?”
강원도에서 여름휴가 중이라는 친구가 안부 카톡을 보내왔다. 올여름, 유럽 역시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니, 생사가 궁금할 만도 하다. 다행히 내가 있는 네덜란드 남부는 요즘 최저 기온이 섭씨 11~12도로 선선하다 못해 추워서 이따금 전기장판을 켜기도 한다. 게다가 지금 나는 7년째 여름마다 찾아오는 독일의 아름다운 모젤(Mosel) 강변에 와 있다.
7년 전, 네덜란드인 남편과 라인강변으로 자전거 여행을 가는 길에 공사 중인 도로를 만나 우회하게 됐다. 날이 저물어 울며 겨자 먹기로 모젤 강변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다음 날 새벽 텐트 밖으로 나오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코앞에는 초록색 강물, 눈앞 언덕에는 푸른 포도밭, 그 꼭대기에 우뚝 솟은 하얀 수도원…. 동화 속 같은 모젤의 매력에 풍덩 빠져든 순간이었다.
모젤강 유역은 로마 시대부터 유명한 와인 산지다. 굽이치는 강이 만든 평지와 가파른 언덕에는 수천만 그루의 포도나무가 끝없이 펼쳐진다. 2000년간 로마 문명과 중세 기독교 문화, 독일의 와인 문화가 겹겹이 쌓인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기도 하다.
명성에 비해 한적한 자전거길은 환상 그 자체다. 중세 성과 뾰족탑 교회, 고풍스러운 마을과 다리, 수백 년 된 와이너리와 로마 유적, 가파른 수도원 언덕을 오르내리는 길은 내가 가본 자전거길 중 단연 최고다.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포도 재배지임에도 최고의 포도 산지가 된 데는 독특한 자연조건이 있다. 남향의 급경사 포도밭은 햇빛을 오래 받고, 강물에 반사된 빛까지 더해져 당도를 높인다. 또한 낮의 열을 머금다가 밤에 방출하는 점판암 토양과 강물의 기온 조절 덕분에 포도는 천천히 익어가며 풍부한 향을 품는다.
시작은 놀랍게도 2000여 년 전 로마 군인들이었다. ‘포도주가 미치지 않은 곳은 로마 영토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정복자 로마인들은 이곳에도 포도나무를 심었다. 이후 모젤 강변에 자리한 도시 트리어(Trier)가 로마제국 서쪽의 중심지가 되면서 재배는 크게 번창했다.
로마의 쇠퇴 후 버려진 포도밭을 부활시킨 건 6세기 가톨릭 수도사들이었다. 특히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정신의 베네딕도회와 시토회 수도사들은 고된 포도 농사를 영적 수행으로 여겼다. 경사 60~70도의 가파른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명품 포도밭 대부분이 이들에 의해 탄생했다. 또한 이들은 토양, 품종, 재배 기술 등을 연구해 기록으로 남겼고 귀족이나 부자들에게 기증받은 포도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와인 품질을 한층 높였다.
모젤 와인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이도 가톨릭 주교였다. 1787년 트리어 선제후 겸 대주교인 클레멘스 벤체슬라우스는 수확량은 많지만 질 낮은 품종을 금하고 최고의 품종만 재배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농업정책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보여주려는 영적 결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모젤 포도주와 가톨릭 신앙이 빚어낸 이야기는, 모젤의 자전거길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깊은 묵상으로 이끈다. 마치 피정 중인 기분이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