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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역사 품은 공소, 지역 신앙 공동체의 중심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31. 안동교구 함창본당 신흥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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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함창본당 신흥공소는 올해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 전통 깊은 신앙 공동체이다. 신흥공소 전경.


안동교구 함창본당 신흥공소는 경북 상주시 함창읍 용곡로 256-10(신흥리 618-1)에 자리하고 있다.

신흥리(新興里)는 말 그대로 새로 생긴 마을을 뜻한다. 순우리말로 ‘새마’라 불렀다. 함창면 신흥리는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일제는 당시 함창군 동면 탑동리, 저곡리(돗질), 검은리와 수하면 중촌리 일부를 병합해 ‘신흥리’라는 새 행정 마을을 만들었다. 함창읍 서쪽에 자리한 신흥리는 너른 평야 지대로 남쪽으로는 오봉산이 솟아 있고, 서에서 동으로 이안천이 흐르고 있다.

이안천이 해마다 범람해 농사짓기 좋은 기름진 퇴적층에 새마을이 조성되자 1925년께 인근 오봉산 봉우재에 살던 일부 주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 새마, 곧 신흥리로 내려와 정착했다. 이들 중 이순철(클레멘스)을 비롯한 가톨릭 교우가 있었는데 주일마다 이순철의 집 아래채에서 공소 예절을 했다. 이를 계기로 이순철은 초대 신흥공소 회장으로 교우들을 이끈다.

 
신흥공소 역대 회장과 간략한 역사를 소개한 현수막이 공소 설립 100주년을 맞아 걸려 있다.


경상도 북부 지역에 인 선교 바람

앞서 1922년 상주 퇴강공소와 문경 공평공소(현 점촌본당)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경상도 북부 지역에 선교 바람이 일었다. 유능하고 열심한 전교회장들이 산과 계곡,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또 신심 깊은 교우들은 이웃에게 미신을 버리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일 것을 권하고 성당과 공소로 안내했다. 봉우재에서 신흥으로 이주한 몇 안되는 교우들이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교회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천주교회보」 1927년 11월 1일 제8호에 퇴강본당 공소 판공성사 배정 일자가 게재돼 있는데 “11월 6일 돗질(신흥), 11월 7일 봉우재”라고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신흥공소가 늦어도 1927년에는 설립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1930년대 중반 조선 천주교 재물조사를 한 자료에 따르면, 신흥공소는 1937년 12월 2일 설립됐고, 부지 206평에 건평 15평, 신흥리 양주석 소유로 돼 있다. 또 공소는 교회 기본금과 각국 교우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인지 안동교구 역시 신흥공소 설립일을 1937년 12월 2일로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4월 12일 낮 2시 신흥공소에서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신흥공소 설정 100주년 기념미사(1925~2025년)’를 봉헌했다. 신흥공소 교우들은 초대 회장 이순철 등 봉우재 교우들이 신흥리 돗질 마을에 정착하고 주일 첨례를 한 해를 공소 설립 해로 본 것이다. 정확한 안동교구사와 함창본당사 서술을 위해서라도 신흥공소 설립일에 대한 정리는 필요할 듯하다.

신흥공소는 신흥리 돗질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 ‘새터공소’ ‘돗질공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함창본당에 약 4㎞ 떨어진 신흥공소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신흥리 지역 신앙의 구심점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설립 당시 신흥공소는 대구대목구 퇴강본당 관할이었으나 1948년 함창본당을 신설하면서 그때부터 함창 관할로 소속돼 있다.

함창본당 신설 당시 신흥공소는 새마 주민 70여 가구 가운데 70가 교우일 만큼 교세가 컸다. 역곡(심실)공소가 설립되기 전 이곳 교우들이 신흥공소까지 와서 혼배를 할 만큼 지역 신앙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힘겹게 완공된 성당, 전쟁으로 상흔

제3대 신흥공소 회장인 이용우(멘나)씨는 1952년 3월 함창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정삼규(요한) 신부가 성당 건축에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논을 팔아 단숨에 성당 공사를 마무리했다. 정삼규 신부는 함창 성당을 봉헌식 날에 제막한 ‘그리스도 왕’ 수호 성인상의 기단에 다음과 같이 글을 새겨넣었다. “천주께 바친 성당 우리 신도들 천추만대로 빛나리라. 더욱 이용우 군의 독지 아름답도다. 천주강생 1954년 11월 24일.”

이용우 회장의 도움으로 완공된 함창성당의 봉헌식은 제6대 대구대목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마지막 공식 행사이기도 했다.

“1900년께 가톨릭교회는 여러 곳에서 자생적으로 싹텄다. 1926년 유교와 불교, 샤머니즘이 만연한 이 농촌 공평에서 북쪽으로 8㎞ 떨어진 곳에 경당이 건립됐다. 1940년에 교우들이 성당 부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대구대목구 주교는 사제의 거처를 함창으로 옮기게 했다. 성당은 초가였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후에야 건립 계획이 확정됐다. 미군들의 도움으로 벽돌을 찍고 건축자재를 조달하고, 초석을 놓았다.

그러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공사 중이던 성당이 파괴되고, 건축자재는 모두 소실됐다. 레지날도 에그너 신부는 아직도 그곳에 전쟁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았음을 보았다. 언덕배기의 초소 같은 희한한 2층 건물을 사제관으로 썼다. 한 교우가 논을 기증해 프랑스식 성당을 건립했다. 1954년 11월 24일 성당 봉헌식은 성 베네딕도회를 대구대목구에 받아들인 최덕홍 요한 주교의 마지막 직무 수행이 됐다. 그 직후 그는 선종했다.”(「분도통사」 1626쪽, ‘함창본당 연대기 1956/1957)

 
삼위일체 하느님과 일치되기를 염원하는 신흥공소 교우들의 기도 글.



사순시기·5월에 함께 기도 전통

신흥공소는 해마다 사순 시기와 5월 성모 성월에 교우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전통이 있다. 사순 시기에는 매일 공소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가 행해진다. 그리고 성모 성월에는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친다. 이러한 성모 신심 때문인지 신흥공소는 안동교구에서 가장 먼저 레지오 마리애 소년 쁘레시디움을 창단했다.

지금의 공소 건물은 1992년 5월 짓기 시작해 그해 10월 11일 봉헌했다. 당시 함창본당 주임이던 정호경(루도비코) 신부는 공사 중 파낸 너른 바위를 반으로 쪼개 본당 묘지 제대와 신흥공소 제대로 사용하게 했다. 정 신부는 또 신흥공소 제단 십자가를 직접 제작하고 죄명패에 한글로 ‘죄명-임명 예수’라고 새겼다.

신흥공소는 강당식 붉은벽돌 시멘트 건물이다. 양쪽 벽면에 너른 창들을 내어 채광을 좋게 해 놓았다. 창틀 위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장식돼 있다. 또 역대 공소 회장과 공소 역사를 간략히 볼 수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더불어 신흥공소 100주년을 맞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주님께 봉헌하며 교우들이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아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기도 글이 액자에 담겨 있다.

더불어 단층으로 제단과 회중석이 구분돼 있고, 제단은 제대와 감실, 십자가, 독서대로 꾸며져 있다. 제단 양쪽 끝단에 커다란 예수 성심상과 성모자상이 눈에 띈다.

신흥공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았으나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더불어 신흥공소는 사제 둘과 수도자 여섯을 배출한 성소 못자리이기도 하다. 또 생명존중과 나눔을 실천하는 안동교구 농민회 생명공동체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기도의 삶이 배어있고,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롯이 희생할 준비가 된 전통 깊은 신앙 공동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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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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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빗 11장 17절
그때에 토빗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혔다. 이어서 자기 아들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게 다가가 그를 축복하며 말하였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어서 들어가거라. 얘야, 들어가거라.” 그날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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