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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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모젤(Mosel) 강변 포도밭과 뜻밖의 피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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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 강변을 가던 중 차질이 생겨 하룻밤 묵었던 곳은 모젤 강변의 ‘퓐데리히’였다. 다음 날 아침 마주친 동화 같은 경치에 놀랐는데, 빵을 사러 마을로 들어섰다가 또 한 번 놀랐다.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만큼 작은 마을 전체가 수백 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루터 앞 골목길에는 반들반들한 자갈이 깔려 있고, 흰 벽에 짙은 갈색 나무 받침목을 댄 독일식 건물 정면에는 1516, 1621이라는 건축 연도가 새겨져 있었다. 벽에는 수확 철 즐거운 풍경이 그려져 있었고 대문과 창문은 포도 넝쿨로 장식되어 있었다.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하고 뾰족탑 성당에서는 15분마다 종소리가 울렸다.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에 유럽 사람인 남편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여기에 머물자!” 둘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해부터 7년째 여름마다 오고 있다. 숙소는 대대로 포도밭을 가꾸고, 수확한 포도로 집안 이름을 건 와인을 만들어 파는 집의 2층 스튜디오. 여기서 일주일쯤 머물며 자전거를 타는데 경치 좋은 곳마다 멈춰 멍하니 바라보거나,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과 수다도 떨며 느슨한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는 우리 일상도 포도를 중심으로 흐른다. 포도밭 사이를 자전거로 달리고, 포도송이 무늬 접시에 담긴 케이크를 먹고, 하루 종일 가톨릭성가 <나는 포도나무요>를 흥얼댄다. 저녁엔 숙소 베란다에 앉아 첫날 봤던 언덕 위 하얀 수도원 ‘마리엔부르크 성’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

알고 보니 이 수녀원은 특별한 곳이었다. 오래된 성채 자리에 1146년 아우구스띠노 수도원이 세워졌고 폐쇄될 때까지 370년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대 귀족이나 부호들이 자녀를 수도원에 입회시킬 때 엄청난 포도밭을 봉헌하는 관습 덕분에 이 수녀원도 대규모 포도밭을 경작하고 관리했다. 그 수익으로는 순례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어제저녁, 노을 지는 포도밭과 수녀원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물었다. “저기 살던 수녀님들도 매일 이런 풍경을 보았겠지?”

“그래, 포도밭은 마르지 않는 묵상 거리였을 거야.” 남편이 말했다.

문득 20대 때의 피정이 떠올랐다. 성모님의 청으로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기적을 두고, 나는 “흥겨운 잔치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발표해 엉뚱하지만 신선한 해석이라고 칭찬받았다. 내게 성경 속 포도주는 여전히 풍요와 기쁨, 축복의 상징이다.

포도주는 희생과 새 계약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다.”(루카 22,20 참조)

최후의 만찬 말씀처럼 포도는 으깨지고 발효되어야 포도주가 된다. 우리를 위해 스스로 포도주가 되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새기라는 신부님 강론도 생각났다.

순간, 떠오른 성경 구절을 휴대폰에서 영어 성경으로 찾아 남편에게 읽어주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참조)

낭독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큰 소리로 화답했다. “아멘!” 우리, 여기 피정 온 것 맞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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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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