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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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게 빼앗겼다 되찾아온 체코 신앙의 상징 ‘팔라디움’ 모신 순례지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86. 체코 스타라 볼레슬라프 성모 승천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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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스타라 볼레슬라프의 성모 승천 대성전.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조반니 마리아 필리피의 설계로 1613~1623년 세운 초기 바로크 순례 성당으로, ‘체코 땅의 팔라디움’을 모시고 있다. 2008년, 프라하대교구의 주요 순례지로 지정됐다. 17세기부터 수도회가 해산될 때까지 예수회가 순례 활성화를 이끌었고, 현재 프라하대교구 소속으로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노 의전사제단이 본당 및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특히 박물관 유물로 직접 분장하는 ‘국중박 분장놀이’는 큰 화제입니다. 올해는 반가사유상, 청동 공양탑, 돌아온 국새 등이 눈길을 끕니다. 단순한 코스프레 대회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와 유물에 관한 관심이 생활 속 놀이와 문화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에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우리 유물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일까? 체코인들에게는 답이 있습니다. ‘체코 땅의 팔라디움’이라고 불리는 높이 19㎝ 남짓한 작은 성모자 부조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적에게 빼앗겼을 때는 큰돈을 치르고 되찾아온 성물입니다. 오늘 순례지는 그 팔라디움이 모셔진 스타라 볼레슬라프(Stará Boleslav)​입니다.

 
마리안스케 광장에서 바라본 스타라 볼레슬라프 구시가지. 오른쪽으로 성모 승천 바실리카 정면이 보인다. 중앙의 시계탑을 둔 아르누보 양식의 흰 건물은 옛 시청사다.


세대 건너 전해진 성물 통해 시작된 순례

스타라 볼레슬라프는 프라하에서 북동쪽으로 25㎞ 떨어진 엘베강이 흐르는 작은 도시입니다. 10세기 체코의 수호성인 성 바츨라프가 순교한 곳으로 체코 신앙의 시작을 상징하는 순교자의 기억과 그 신앙을 세대에서 세대로 품어온 성모님의 보호에 대한 믿음이 자리한 도시지요.

이곳이 성모 순례지가 된 것은 슬라브족에게 복음을 전한 성 메토디오가 성 루드밀라에게 건넨 작은 팔라디움인 성모자 부조 덕택입니다. 팔라디움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도시의 안전을 보장하는 아테나 여신의 신상’을 뜻합니다만, 유럽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국가나 민족이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보호해 준다고 믿는 성물을 가리킵니다.

루드밀라는 성모자 팔라디움을 손자 바츨라프에게 물려줬고, 바츨라프는 늘 몸에 지니며 성모님의 보호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에 충실했던 바츨라프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 동생 볼레슬라프 일행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사건 직후 신하였던 복자 포디움이 팔라디움을 숨겼지만, 자신마저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어 땅속에 숨겼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1160년 무렵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성모자 팔라디움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팔라디움을 집으로 가져가도 다시 발견된 자리로 돌아오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 팔라디움을 모실 소성당을 세웠고,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성모 승천 바실리카 주 제대와 본랑. 대성전 내부는 1620년대 황실과 보헤미아 귀족들의 후원으로 꾸며졌으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모 탄생, 주님 탄생 예고 등 성모의 생애를 주제로 한 6개 소성당은 여러 귀족 가문이 맡아 장식했다. 정면의 웅장한 바로크 주 제대는 1721년 프란티셰크 막스밀리안 칸카가 설계하고 마티아시 베르나르트 브라운 공방이 조각했다.


나라의 위기에서 보호 청한 팔라디움

순례가 크게 성장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종교개혁과 정치 갈등으로 사회가 흔들리자, 신자들은 성모상 앞에서 나라와 신앙의 보호를 청했습니다. 순례자가 늘어나자 1623년에 마티아스 황제와 티롤의 안나 황후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성모 승천 바실리카가 건립됩니다.

하지만 새 성당은 곧 30년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1632년 신교인 작센군은 성당을 약탈하며 팔라디움까지 빼앗아 갔고, 체코 측은 거액을 내고 되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로는 전쟁이 일어나면 공동체와 함께 빈, 프라하 등으로 피란하기도 했죠. 팔라디움은 피란과 귀환 과정을 겪으면서 차츰 개인의 신심을 넘어 체코인의 신앙이 결집하는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1670년대 말 예수회는 프라하에서 스타라 볼레슬라프까지 약 22㎞에 이르는 ‘거룩한 길’을 조성했습니다. 로레토 성모 호칭 기도의 44개 호칭에 맞춰 길을 따라 44개의 소성당을 세우고, 순례자들은 성모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이 길을 걸었지요.

 
‘체코 땅의 팔라디움’이라 불리는 성모자 부조. 높이 19㎝, 너비 13.5㎝의 작은 동판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돋을새김하고 두껍게 금도금했다. 현존 작품은 14세기 말~15세기 중엽 제작된 것으로 보며,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성 비투스의 성모’와 닮았다. 보석과 왕관 장식은 후대에 더해졌다. 현재 진품은 바실리카 안의 별도 팔라디움 소성당에 모셔져 있으며, 해설 관람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성모 승천의 희망 새겨진 바실리카

엘베강 동쪽에 자리한 구시가지 안에 성 바츨라프의 옛 무덤이 있던 바실리카, 성 클레멘스 성당, 성모 승천 바실리카가 가까이 모여 있습니다. 순례 사목을 맡은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노 의전사제단 건물과 옛 예수회 건물과 순례자 숙소 등이 남아있어 도시 곳곳에서 오랜 순례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리안스케 광장에 들어서면 흰색과 붉은빛이 대비되는 바실리카의 정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면 양쪽에는 성모님의 돌봄 아래 체코 신앙의 역사를 보여주는 인물들이 층층이 자리합니다. 꼭대기에 금빛 팔라디움 부조 장식 아래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가운데에는 성 바츨라프와 성 루드밀라, 그 아래에는 네포무크의 성 요한과 복자 포디벤이 있습니다.

바실리카 안에는 넓은 단일 본랑 양쪽으로 성모의 생애를 주제로 한 6개의 소성당이 이어집니다. 가운데 바로크 주 제대에는 사도들이 성모의 빈 무덤을 둘러싸고, 그 위로 성모가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땅속에 묻혔다가 발견되고, 전쟁 중 빼앗겼다가 다시 돌아온 팔라디움의 역사도 이 ‘죽음과 상실이 끝이 아니다’라는 성모 승천의 희망과 자연스럽게 겹치는 듯합니다.

주 제대 감실 위에 조그만 팔라디움이 모셔져 있습니다. 웅장한 성당 공간과 비교하면 그 작은 크기에 놀랍니다. 진품은 별도 공간에 있지만, 제대 앞에서 봉헌한 수백 년의 기도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가족과 나라를 위해 기도한 수많은 사람의 청원이 이 작은 성모자 부조 앞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팔라디움은 역사적 사실과 전승, 왕실의 정치와 민중의 신심이 복잡하게 얽힌 성물입니다. 하지만 명확한 건 이 성물에 앞선 세대들이 무엇을 믿었고, 나라와 삶이 흔들릴 때 누구에게 의지했는지 기억이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갈등이 심해지는 요즘, 우리가 세대와 생각의 차이로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함께 지켜온 가치와 믿음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성모님의 도움과 보호를 청합니다.

 


<순례 팁>

※ 프라하 도심에서 지하철 B선을 타고 종점에서 PID 367번 탑승 후 스타라 볼레슬라프 구시가지 하차 (총 1시간 소요).

※ 성모 승천 바실리카 미사: 주일 및 대축일 09:00. 성당 및 회랑 개방 10:00~17:00. 성당 뒤에 순례 정보센터가 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차윤석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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