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 국을 뜨던 아이가 문득 숟가락을 멈추고 묻는다. “왜 밤하늘은 까매?” 어른은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몇 초 뒤 화면 위로 정갈한 문장이 뜬다. ‘우주가 계속 넓어지면서 빛이 멀어지고, 해가 진 동안에는 우리가 있는 곳에 햇빛이 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숟가락을 든다. 그런데 이상하다. 궁금증은 채워졌는데, 무언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린 느낌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등의 연구진이 참여해 2025년 12월 발표한 논문에서, 5세에서 7세 사이의 아이 103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2주간 실험했다. 한 집단에는 과학수업 중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 했고, 다른 집단에는 귀 기울여 ‘들으라’ 했다.
2주간의 과학수업이 끝난 뒤, 연구팀은 새 과학 영상을 보려면 스티커를 몇 개까지 낼 수 있는지 물어, 새 정보를 얼마나 갖고 싶어 하는지를 가늠했다. 질문하며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그저 듣기만 한 아이들보다 더 많은 스티커를 기꺼이 내놓았다. 새로 알게 될 지식에 매긴 값이 더 높았다는 뜻이다. 특히 처음부터 과학을 잘 몰랐던 아이일수록, 질문해 보는 경험 뒤에 새 과학 정보를 더 얻고 싶어 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집단이 실제로 배운 과학 지식의 양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연구팀은 아이들이 더 많은 답을 들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왜?’라고 물어본 경험 때문에 새 지식을 더 값지게 여기게 됐을 수 있다고 본다. 무언가 물으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들여다봐야 하고, 그 빈틈을 알아차리는 순간 지식은 비로소 아이에게 값을 지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AI는 이 빈틈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엇을 물어도 답하지만, 스스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이가 별을 보며 왜냐고 묻기 전, 마음속엔 이미 작은 균열이 자라고 있었다. 그 균열이야말로 질문의 시작이며 배움의 출발점이다. AI에게는 그런 균열이 없다. 물음이 던져지는 순간 즉시 메워야 할 빈칸일 뿐, 며칠이고 품고 다니는 궁금증이 아니다.
요즘은 물음표를 띄우기 전에 먼저 화면을 켠다. 회의 중 모르는 말이 나오면 손을 들기보다 조용히 검색창을 연다.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 점점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정작 부끄러워할 것은 무지가 아니라, 그 무지를 견디지 못해 서둘러 덮어버리는 조급함이다. 질문은 무지를 고백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고백을 생략한 채 얻은 답은 지식이 되지 못하고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질문은 답보다 불편하다. 무엇을 모르는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통과한 사람만이 지식을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AI는 세상 거의 모든 물음에 답할 수 있지만, 단 하나의 물음도 스스로 품지 못한다. 궁금해하는 능력,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잠시 멈추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배움의 문이다. 인간의 진짜 답은 완결된 문장이 아니라, 또 다른 물음의 형태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오늘 당신은 완결된 답을 구했는가, 아니면 그 답을 새로운 물음으로 되돌려 보냈는가. AI가 답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되물어 답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