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나 잘 지내.” 짧은 한마디인데 어머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말끝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고, 웃음소리 뒤에 미세한 머뭇거림이 섞여 있다. 몇 초의 침묵, 그 틈에서 어머니는 이미 알아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정작 딸은 그 어떤 사정도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같은 말을 인공지능(AI) 스피커에게 건네면 어떨까. 문장은 정확히 인식하고, “다행이네요”라는 다정한 답이 곧바로 돌아올 것이다. AI는 문장을 읽지만, 문장 뒤에 숨은 떨림은 읽지 못한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교 연구진은 2025년 4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간극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미지, 영상, 언어를 다루는 AI 모델 350여 개를 모아 실험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3초짜리 영상을 AI에게 보여 준 뒤, 연구진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 매긴 평가와 뇌 반응을 AI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는지 비교했다.
물체와 장면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반응에서는 AI가 비교적 사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함께 무엇을 하는지, 서로 소통하는지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이 걸린 장면에서는 한계가 뚜렷했다. 특히 그 장면을 볼 때 나타나는 사회적 시각 처리 관련 뇌 반응을 인간 수준으로 예측한 모델은 없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었다. 사람이 쓴 문장 설명을 함께 받은 AI는 영상만 보고 판단한 AI보다 사람들의 평가를 더 비슷하게 맞혔다. 언뜻 사람과 비슷하게 이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볼 때 사람의 뇌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니 결과는 달랐다. 문장 설명을 받은 AI조차 사람의 뇌 반응은 제대로 맞히지 못한 것이다.
답은 비슷하게 냈지만, 그 답에 이르는 방식은 사람과 달랐다는 뜻이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을 맡은 뇌 부위에서는, AI가 사람을 따라잡지 못하는 정도가 훨씬 더 심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한다. 지금의 AI는 정지된 장면을 읽는 데는 능숙해졌지만,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살아 있는 장면을 인간처럼 읽어 내기에는 아직 서툴다는 것이다.
맥락을 읽는다는 것은 정답에 가까운 판단을 내놓는 일이 아니다.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을 알아채는 일이다. 목소리의 떨림, 시선이 머무는 시간, 침묵의 무게 그리고 그 사람을 오래도록 지켜봐 온 시간의 축적. 이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맥락이 완성된다. 정답을 맞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알고리즘은 어제와 오늘의 표정을 나란히 비교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말보다 먼저 마음을 읽고, 정답을 찾기보다 상대를 살피는 것. 그 능력은 데이터를 쌓는다고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고, 눈을 맞추고, 서로의 침묵을 견뎌온 시간 속에서만 조용히 자란다.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말 뒤에 숨은 표정을 놓치지는 않았는가. AI가 분석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맥락을 읽는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