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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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서 보호해주신 성모님 자비의 도시, 600년간 이어진 순례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88. 이탈리아 비첸차 몬테 베리코 성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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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4m 비첸차 몬테 베리코 언덕 정상에 자리한 성모 성지. 1426·1428년 두 차례 성모 발현 후 성당이 세워졌고 이듬해 수도원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성 비르지타의 구세주 수도회가, 1435년부터는 성모의 종 수도회가 성지를 지켜왔으며, 나폴레옹 시대인 1810년 한때 폐쇄됐다가 1835년 재건됐다. 출처=shutterstock


독일 유학 시절 베네치아를 자주 오갔습니다. 뮌헨대학이 주도적으로 베네치아 국제대학에서 강의를 개설할 수 있었기에 선생님, 학생들과 함께 섬에서 한주씩 머물며 세미나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오가면서 가끔 베네토의 도시들을 들르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고대 로마 건축의 비례와 질서를 르네상스 시대의 생활 공간에 새롭게 구현한 ‘팔라디오의 도시’ 비첸차였습니다.

비첸차 교외에 있는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대표작 라 로톤다를 보러 갔을 때 맞은편 언덕 위에 성당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당이 정작 비첸차 사람들이 수백 년 순례하던 성모 성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땐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겁니다.

 
몬테 베리코 성모 바실리카 정면. 길이 약 42m, 너비 27m로 1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1428년에 세운 작은 고딕 성당을 여러 차례 확장했으며, 현재의 돔을 얹은 바로크 성당은 카를로 보렐라가 옛 성당과 새 중앙 공간을 결합한 팔라디오의 구상을 더 큰 규모로 계승해 1688~1703년에 세웠다. 왼쪽의 붉은 벽돌 종탑은 19세기에 세웠다. 1904년, 성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승격됐다.


150개의 아치 지나 만나는 바실리카

비첸차역을 나와 오른쪽으로 걷다 철길을 지나면 낮은 언덕길이 나타납니다. 팔라디오가 구상했다는 개선문을 지나 오르는 옛 순례길도 있지만, 요즘처럼 햇볕이 따가울 때는 수도원 회랑을 연상시키는 몬테 베리코 주랑길을 오르는 게 좋습니다.

18세기 중반에 로사리오 15단을 150개의 아치로 구현한 길을 오르다 보면, 회랑 끝 저편으로 몬테 베리코 성당의 흰 바로크 정면과 둥근 청록빛 돔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각과 기둥으로 장식된 밝은 석조 외벽 곁에는 붉은 벽돌의 높은 종탑이 서 있어 강한 대비를 이룹니다.

 
몬테 베리코 바실리카 본랑과 주 제대. 1688~1703년 조성된 바로크 공간은 높은 돔과 큰 아치, 대리석 기둥으로 넓은 중앙부를 이루고, 안쪽의 15세기 옛 고딕 성당과 연결된다. 정면의 성모 제대가 두 건축 공간을 잇는 중심축이며, 초기 소성당도 이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모 제대 주변에는 초기 성당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옛 가대석에선 당시 비첸차의 풍경과 건축물을 표현한 정교한 목재 상감 장식도 볼 수 있다.


같은 곳에서 두 차례 발현하신 성모

몬테 베리코 성지는 올해로 성모 발현 6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성당 정문 위에 이곳의 기원에 대한 부조가 보입니다. 이야기는 1426년 3월 7일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비첸차 성벽 남쪽으로 펼쳐진 이 언덕에는 포도밭과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일흔 살의 빈첸차 파시니는 밭에서 일하던 남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려고 언덕을 오르다가 성모 발현을 목격합니다.

당시 비첸차 지역은 20년에 걸쳐 되풀이된 페스트에 더해,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불안까지 짓눌리던 상황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언덕에 성당을 세우면 도시에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아무도 노파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2년 뒤인 1428년 8월 1일,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발현이 일어났습니다. 페스트가 이어지자 마침내 모두가 그녀 말에 귀를 기울였고, 불과 24일 만에 성당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늘어나는 순례자 위해 확장된 성전

첫 고딕 성당이 세워지자 곧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1429년에는 성지를 돌보기 위한 수도원이 들어섰고, 1435년부터 지금까지 성모의 종 수도회(O.S.M) 수도자들이 순례자들을 맞이합니다.

순례자가 늘자, 성당도 계속 확장됐고, 팔라디오도 이 일에 동참했습니다. 팔라디오는 1562년경 중앙집중식 성당을 위한 새로운 설계를 내놓았으나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1578년 성모 제대 앞 좁은 공간을 넓히기 위해 기존 고딕 성당 북쪽에 약 12m 폭의 정방형 공간을 덧붙였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높은 돔 아래 밝은 바로크 공간이 한꺼번에 펼쳐져 바깥에서 본 성당과는 또 다른 개방감을 느끼게 합니다.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성모 발현이 이뤄진 장소에 자리한 성모 제대를 향합니다.

팔라디오가 증축한 부분은 1688~1703년 더 큰 바로크 성당을 짓는 과정에서 사라집니다. 성모 제대 앞에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성당이 좁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중앙 공간을 성모 제대에서 연결한다는 팔라디오의 기본 구상이 더욱 확대되어 오늘날 바실리카의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몬테 베리코 ‘자비의 성모’상. 1428년 무렵 니콜로 다 베네치아가 제작한 높이 약 1.7m의 채색 석상이다. 중세 후기 ‘자비의 성모’ 도상으로, 페스트로 고통받던 비첸차 공동체를 보호하는 성모의 자비를 드러낸다.


하느님 백성 품어 주시는 성모님의 망토

주 제대 위에는 두 팔로 큰 망토를 펼쳐 사람들을 감싸는 ‘자비의 성모(Mater Misericordiae)’상이 있습니다. 당시 발현의 장면을 재현했다기보다, 이곳에서 성모 발현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자비의 성모는 중세 후기에 사랑받던 도상으로 처음에는 특정 수도회나 형제회 회원들이 망토 아래에 있는 모습이었지만, 차츰 성별·신분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품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모두 성모의 망토 아래 보호받는다는 ‘모두의 성모’가 된 것이죠.

14세기 흑사병 이후 성모의 망토는 전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5세기에는 하느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페스트의 화살’을 성모의 망토가 막아주는 도상까지 나타납니다.

실제로 몬테 베리코 성지는 페스트로 죽어가던 도시가 성모의 보호를 청하며 탄생한 곳입니다. 1630년 북이탈리아에 전염병이 또다시 번졌을 때도, 비첸차 시민들은 몬테 베리코의 성모님에게 보호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이 망토는 이 성지의 600년 역사를 압축한 상징처럼 보입니다.

성모 발현 당시 비첸차시는 사건을 조사해 발현과 초기 기적에 관한 증언을 기록했고, 그 문서는 지금도 시립도서관에 보존돼 있습니다. 하지만 발현이나 기적 자체보다 더 눈길을 끄는 사실이 있습니다. 루르드의 베르나데트나 파티마의 어린 목동들의 경우에서 그랬듯이, 600년 동안 이어진 이곳 순례도 결국 한 평범한 여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성모님의 넓은 망토 아래 누구도 소외되지 않음을 느끼며, 오늘날 우리가 누구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순례 팁>

※ 베로나에서 기차로 약 30분, 베네치아에서 약 45분 소요. 비첸차 역에서 몬테 베리코 성지까지 도보 30분 또는 시내버스 18번.

※ 몬테 베리코 바실리카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7:00~12:00, 16:00~19:00(동절기 ~18:00) 매시간, 평일 7:00~11:00 매시간, 16:30, 18:00 (동절기 17:00). 주 제대 옆 몬타냐의 「피에타」, 옛 수도원 식당의 베로네세의 「성 대 그레고리오의 만찬」 놓치지 말 것.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차윤석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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