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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모진 문초에도 신앙 지킨 9위의 순교자들

[순교자 성월 특집 신앙의 영광] (상) 병오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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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포함 9명 순교한 병오박해
순교자 행적 담은병오일기교황청에
이후 1984년 5월 성인품에 올라

 

1925년 7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비오 11세 교황이 한국 순교자 79위(기해박해 70위·병오박해 9위) 시복식을 주례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9월 순교자 성월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25년 7월 5일 기해(1839년)·병오(1846년)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을 계기로 이듬해부터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왔다. 79위 복자 가운데 33위가 9월에 순교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79위 순교 복자가 가장 많이 순교한 날인 9월 26일(김제준 이냐시오 등 기해박해 순교자 9위)을 ‘한국 순교 복자 축일’로 기념해오다 1984년 103위 한국 순교자 시성 이후 그해부터 9월 20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축일이 이동한 이유는 103위 순교 복자가 성인품에 오르면서 이들을 기념하는 날이 보편 교회 전례력에 첨부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간 순교 복자 축일은 한국 교회에서만 기념일로 지내왔었다. 문제는 보편 교회가 9월 26일을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축일로 지내고 있어, 다른 날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남경문(베드로) 등 병오박해 순교 성인 7위가 한꺼번에 순교해 103위 성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순교한 날인 9월 20일을 103위 순교 성인 대축일로 정하게 됐다. 이날은 보편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103위 순교 성인을 기념하는 거룩한 하루다.

한국 교회는 9월 순교자 성월 동안 우리 신앙 선조들을 기리고 그 모범을 본받고자 기도하고 순례하며 특별한 희생을 바친다. 특히 올해는 병오박해 180주년이자 병인박해(1866년) 160주년이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이를 기념해 특집 ‘신앙의 영광’을 기획, 3회에 걸쳐 병오박해·병인박해, 이 땅의 무명 순교자들을 연재한다.

 
병오박해 때 순교한 9위 성인들, 순서대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 현석문(가롤로), 남경문(베드로)·한이형(라우렌시오)·우술임(수산나)·임치백(요셉)·김임이(데레사)·이간난(아가타)·정철염(가타리나)


김대건 신부의 용기로 큰 희생 막아

병오박해는 1846년 6월 5일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체포를 시작으로 그해 9월 16일 김 신부, 19일 현석문(가롤로), 20일 남경문(베드로)·한이형(라우렌시오)·우술임(수산나)·임치백(요셉)·김임이(데레사)·이간난(아가타)·정철염(가타리나)의 순교로 마무리됐다.

김대건 신부는 6차례에 걸쳐 40번의 문초를 받았지만 자기 신상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 조선 교회 사정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것도 실토하지 않았다. 당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충청도 수리치골 교우촌에 은신해 있었는데도 김 신부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조선 가톨릭교회는 큰 희생 없이 박해를 피해갈 수 있었다.

더불어 헌종 임금을 비롯한 조정도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를 확대할 마음이 없었다. 프랑스 함대가 선교사 처형을 이유로 조선을 넘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여 병오박해 동안 순교한 교우는 앞서 밝힌 대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모두 9명에 불과했다. 그 결과 교회 상황은 빠르게 안정되어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사목을 재개할 수 있었다.

1839년 기해박해 이후 1840년대 중반까지 조선 가톨릭교회는 비교적 평온한 가운데 신앙 공동체를 재건해갔다. 1845년 10월 조선 땅을 밟은 페레올 주교는 한양에서 양반 교우들을 중심으로, 다블뤼 신부는 일반 교우들과 함께 믿음의 자리를 다졌다. 갓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도 한양 일대를 돌며 교우들에게 미사와 성사를 베풀었다.

김대건 신부는 무엇보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를 개척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기해박해 이후 육로를 통한 조선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부제 때부터 해상 입국로 개척에 힘써왔다.

페레올 주교는 1846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김 신부에게 최양업 부제와 메스트르 신부가 입국할 수 있는 새로운 해상 입국로 개척을 지시했다. 이에 김 신부는 그해 5월 12일(음력 4월 17일) 배를 빌려 한강 마포나루에서부터 서해안 연평도, 백령도를 항해하면서 해상도를 작성했다. 그리고 중국 어선과 접촉,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낼 페레올 주교의 보고서와 편지 6통, 자신이 그린 조선 지도와 입국 해로 2점을 선장에게 건넸다.


선교사 위한 조선전도 제작

김대건 신부는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15일 한양에 도착한 후 106일 동안 한양 소공동 돌우무골에 머물 때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활용할 ‘조선전도’를 제작했다. 그는 조선전도에 중국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입국할 선교사를 위해 서해와 남해의 섬 위치를 비교적 상세히 그려넣었다. 이 조선전도는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후 교회 밀사를 통해 1846년 12월 중국 변문에서 조선 입국을 기다리던 메스트르 신부에게 전달돼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전해졌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6월 5일 순위도 등산진에서 배를 징발하려는 첨사 정기호와 포졸들에게 일행과 함께 체포돼 해주 감영을 거쳐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됐다. 또 포졸들은 김 신부 은신처인 한양 돌우물골 집과 그가 성장했던 용인 은이 교우촌을 덮쳐 현석문을 비롯한 교우 30여 명을 체포했다.

김대건 신부의 체포는 조정에서 큰 문제가 됐다. 김 신부는 체포된 직후 조선 땅에 몰래 들어온 중국인으로 행세했을 뿐 아니라, 그가 중국인 선장에게 전해준 서해 연안 지도와 편지가 압수돼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때마침 세실 함장이 이끄는 3척의 프랑스 함대가 8월 초 충청도 외연도 인근에 들어와 기해박해 때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를 처형한 데 항의하면서 회담을 요청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외세 무력 위협 경계한 김대건 신부

옥에서 이 소식을 들은 김대건 신부는 프랑스 함대가 성과 없이 그대로 돌아가면 조선 교회에 큰 해를 끼칠 뿐이라고 예견했다. 김대건 신부는 1842년 8월 29일 아편전쟁에서 진 청이 영국과 불평등한 조약을 맺는 것을 남경 현장에서 세실 함장과 참관했다. 이후 그는 선교와 신앙 자유를 앞세운 외세의 무력 위협이 조선 지배층에 위기감만 높여주고 그리스도교 배척 의식을 경직시킬 뿐이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안내와 연락으로 서양인들이 온다고 믿기 때문에 서양 배들이 조선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신자들에 대한 외교인들의 증오심을 일으키게 합니다.”(김대건 신부가 1845년 11월 20일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하지만 김대건 신부의 인식과 달리 조선의 서양 선교사들은 복음 선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프랑스인들이 종교와 인류를 위해서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양심의 자유를 요구해야 하고, 또 그것을 손에 칼을 쥐고 요구하면 얻을 것입니다.”(페레올 주교가 1847년 11월 25일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헌종과 대신들은 1846년 9월 5일 묘당회의와 15일 어전회의를 잇따라 열고 김대건 신부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 신부와 체포된 일행은 서양 선박을 조선으로 불러들인 역적으로 사형이 선고됐다.
김대건은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25살 나이로 순교했다. 김 신부 순교 사흘 뒤인 19일 현석문도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또 다음날 20일 포도청에 갇혀있던 남경문·한이형·우술임·임치백·김임이·이간난·정철염이 곤장을 맞고 순교했다.

페레올 주교는 이들 순교자 행적을 철저히 조사한 뒤 「병오일기」를 작성해 홍콩으로 보냈고, 마침 홍콩에 머물고 있던 최양업 부제가 라틴어로 번역해 기해박해 순교자 행적과 함께 1847년 교황청 예부성성으로 보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병오박해 순교자 9위는 1925년 7월 5일 기해박해 순교자 70위와 함께 시복됐고,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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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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