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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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소비로 대체하는 시대, 초보 부모 현혹하는 ‘육아템’

[육아를 삽니다] (상) ‘국민템’은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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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대비 출생아 58 수준인데 
아동·육아용품 거래액은 2배 증가
‘국민템’이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야
 

태아 사진 보고 있는 이경재·손수정씨 부부

아이 한 명이 태어나기 전 수십 가지 물건이 집에 먼저 들어온다. 카시트와 유모차, 침대에 젖병 소독기, 분유 제조기, 기저귀 갈이대까지. 육아의 수고를 덜어주는 제품은 어느새 ‘필수템’이 되고, 많은 부모가 선택한 제품에는 ‘국민템’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태어나는 아이는 줄었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015년 43만 8420명에서 2023년 23만 28명으로 감소했다. 2025년에는 25만 4341명으로 반등했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58 수준이다. 반면 국가데이터처 온라인쇼핑동향에 따르면, 온라인 아동·유아용품 거래액은 2015년 2조 7090억 원에서 2025년 5조 4515억 원으로 늘었다.

 
베이비페어 현장

지표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10년간 출생아 수는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온라인 아동·유아용품 거래액은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물론 이 숫자를 그대로 ‘과잉 소비’로만 읽을 순 없다. 같은 기간 물가가 올랐고, 유아용품 소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영향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를 적게 낳는다고 육아용품 소비까지 함께 줄어드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육아용품 소비시장은 오히려 커졌다. 아이 한 명을 위해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와 삼촌·이모까지 지갑을 연다는 이른바 ‘텐(10)포켓’이라는 말도 이런 소비 현상을 반영한다.

용도와 사용 시기도 촘촘해졌다. 유모차만 해도 디럭스형·절충형·휴대용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흔하지 않았던 젖병 소독기와 분유 제조기 같은 제품도 출산준비 목록에 들어왔다.
아이를 키우며 물건의 도움을 받는 건 자연스럽다. 문제는 ‘있으면 편리한 것’과 ‘없으면 안 되는 것’의 경계다.




알수록 늘어나는 필수품

9월 말 태어날 ‘튼튼이’를 기다리는 이경재(39)·손수정(35)씨 부부가 베이비페어를 찾았다. 이번이 두 번째다. 부부가 이날 반드시 사겠다고 정한 제품은 카시트였다.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가격이나 디자인과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고민은 다른 제품에서 시작됐다. 신생아용 디럭스 유모차를 가족에게 물려받기로 해 절충형 유모차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스를 돌며 제품 설명을 듣자 판단이 달라졌다.

“조금 고생하면 절충형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필요하겠더라고요. 설명을 들으면 ‘이것도 있어야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잡은 예산은 150~200만 원. 아기 침대와 책장, 기저귀 갈이대 등을 물려받는데도 카시트와 유모차, 매트 등을 더하니 어느새 400~5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제품에 대한 지식은 첫 방문 때보다 많아졌지만, 필요한 용품 수는 오히려 많아진 셈이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제는 저도 어느 정도 알잖아요.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 조금 더 구매욕이 생기게 되는 거죠.”


필요를 미리 준비하는 육아

이혜원(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이를 ‘장비를 갖추고 시작하는 육아’라고 표현했다. 과거에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필요한 물건을 그때그때 마련했다면, 지금은 성장 과정을 예상해 필요한 제품을 미리 갖춘다는 설명이다. 어떤 취미를 시작하기 전에 장비부터 갖추려는 모습과 닮았다.

이 연구위원은 “소비가 부모 역할을 확인하는 방식과도 연결돼 있다”고 봤다. 처음 겪는 육아를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공백을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채우면서 안심하는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필요가 생긴 뒤 물건을 찾는 육아에서, 필요를 예상해 물건부터 준비하는 육아로 소비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부모들

첫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미리 준비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가장 좋은 것을 입히고 먹이고 싶은 당연한 마음에서다. 제품 가격과 기능을 비교하는 정보는 곳곳에서 넘쳐나지만, 아이를 키워본 경험도 없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물건을 잘 사용할지도 알 수 없다. 이때 다른 부모들의 선택이 하나의 기준이 된다. ‘국민템’이다.

이경재씨 역시 국민템이란 말이 마케팅 용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많이 쓴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 않겠느냐”고 했다.

 
정윤경 교수


정윤경(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육아 소비의 출발점에서 자녀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짚었다. 여기에 불안이 더해지면 소비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내 것은 희생해도 아이에게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잘 자라지 못하면 어떡할까’라는 불안과 맞물리면 과도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육아용품에는 일반적인 소비재와 다른 명분도 따라붙는다. ‘아이의 성장에 필요하다’는 이유다. 정 교수는 “이 때문에 물건을 사지 않는 선택시 죄책감이 개입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제품 하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해줘야 할 무언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가격은 비교할 수 있다. 더 어려운 판단은 ‘이 제품 없이도 우리 아이가 괜찮을까’에 있다. 답을 알기 어려울수록 많은 부모들이 하는 선택이 내 판단의 부담을 덜어준다. 초보 부모에게 ‘국민템’은 인기 상품을 넘어 부족한 육아 경험을 다른 부모들의 선택으로 보완하는 기준이 된다.


경험이 바꾼 필수의 기준

6살과 2살 두 아이를 키우는 박상헌(37)·한지혜(36)씨는 첫째와 둘째에게 옷을 사주는 방식부터 달라졌다. 첫째 때는 결혼식이나 여행, 외출 일정이 생길 때마다 그 자리에 맞는 옷을 한 벌씩 ‘착장’으로 구입했다. 둘째에게는 필요한 옷만 계절마다 두세 벌 정도 새로 구매하게 됐다. 첫째를 키우며 아이 옷의 사용 기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송진우(39·도미니코)·정지수(37·도미니카)씨 부부는 “둘째 때는 소비가 0에 가까웠다”고까지 했다. 첫째와 성별이 같고 터울이 짧아 옷과 육아용품 대부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용품은 사용하지 않게 됐다.
이처럼 첫째 육아에서 쌓인 경험은 둘째를 낳아 키울 때 불필요한 물건을 가려내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소비에 대한 고민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이가 자라면서 장난감과 옷, 책과 교구 등 새로운 선택지가 계속 등장한다.

아이 스스로 갖고 싶은 물건을 말하기 시작하면 질문도 달라진다. 부모가 ‘무엇이 필요한가’를 대신 판단하던 단계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어디까지 채워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물건이 바뀌고, 부모가 답해야 할 질문도 바뀐다.


물건으로 사는 시간

소비를 줄인다고 더 나은 육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육아용품은 실제 부모의 수고와 시간을 덜어준다. 맞벌이에 돌봄을 대신해줄 가족이 가까이 없는 가정이라면 돈을 들여 시간을 사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되기도 한다.

송진우씨는 육아용품이 주는 효용으로 부모의 ‘시간’을 꼽았다. 육아용품을 활용하면 반복되는 일을 줄이고 그만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제품도 가정마다 효용이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없어도 되는 편의용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육아 노동을 덜어주는 장비가 된다.

또 육아용품은 부모가 구매하고 아이가 사용한다. 이 특성 때문에 소비의 수혜자를 한쪽으로만 가르기도 어렵다. 부모의 편의를 위해 산 제품이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아이를 위해 마련한 물건이 부모에게 시간과 심리적 여유를 줄 수도 있다. 카시트처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품도 있다. 물건의 개수나 가격만으로 육아 소비를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고민할 지점은 그 물건이 무엇을 대신하고 있는가다. 아이에게 필요한 기능인지, 부모의 노동과 시간을 줄여주는 것인지, 갖고 있지 않을 때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인지에 따라 소비의 의미도 달라진다.


‘필수’와 ‘필요’ 사이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하면 육아 소비는 다시 달라진다. 부모가 필요를 예상해 물건을 준비하던 단계에서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혜원 연구위원


이혜원 연구위원은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을 ‘결핍이 결핍된 세대’라고 표현했다. 이 연구위원은 물건의 양보다 아이의 욕구에 주목했다. 이 연구위원은 “안전이나 발달에 문제가 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모든 필요를 부모가 앞서 채우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다리고 선택할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는 무엇인가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기다리고,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른 뒤 물건을 얻는 과정이다. 즉 부족함을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아이가 필요를 느끼기 전에 부모가 먼저 채워주거나 원하는 것을 곧바로 마련해주면 이런 경험은 짧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필수템’과 ‘필요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많은 부모의 선택이 곧 아이의 필요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필수의 기준은 첫아이를 키우며 달라지고, 아이가 자라면서 다시 달라진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과 육아의 수고를 덜고 싶은 현실 사이에서 부모들은 계속 장바구니를 채우고 비운다. ‘국민템’이 정말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도 오늘날 부모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육아가 됐다.

‘이 물건은 정말 아이에게 필요한가’ ‘있으면 편리한가’ ‘갖고 있어야 부모인 내가 안심하는가’. 아이를 낳기 전부터 시작된 이 질문은 출산으로 끝나지 않는다.

cpbc 특집다큐 ‘육아를 삽니다’는 9월 1일 오후 8시 본방송 이후 5일 오후 11시, 6일 오전 10시 10분, 10일 오전 2시, 11일 오후 4시에 방영된다.  cpbc플러스와 유튜브 채널 ‘cpbc 라디오’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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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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