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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희의 시사진단] 버리는 풍요에서 고쳐 쓰는 가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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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파리 올림픽 메달에는 아주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승리한 선수들의 목에 걸린 메달 중앙에 135년 역사를 지닌 에펠탑의 실제 철 조각이 박혀 있었다. 과거 개보수 과정에서 철거해 보관하던 에펠탑의 철을 가공해 영예로운 승리의 증표로 재탄생시킨 이 시도는 ‘가장 가치 있는 자원순환’이 무엇인지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9월 6일은 정부가 지정한 제18회 ‘자원 순환의 날’이다. ‘9’와 ‘6’이라는 숫자가 서로를 거꾸로 뒤집은 모양처럼, ‘순환’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에서 제정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일상을 둘러보면 자원의 순환보다는 ‘일회성 소비’와 ‘쉬운 폐기’가 훨씬 더 익숙하다. 조금만 고장이 나도, 수리비가 새로 사는 값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무심코 버려지는 가전제품들, 멀쩡해 보이는 옷과 물건들이 넘쳐난다. 자원 고갈과 폐기물 대란이라는 경고 속에도 우리는 여전히 ‘쉽게 사서 쉽게 버리는’ 일회용 문명에 깊이 길들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국제 사회와 환경 운동 현장에서 주목받는 화두가 바로 ‘수리권(Right to Repair)’, 즉 ‘고쳐 쓸 권리’이다. 소비자가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쉽게 부품을 구하고, 자가·사설 수리를 통해 더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자는 움직임이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이 제조 단계부터 수리가 쉽도록 설계하고 정비 매뉴얼과 부품 공급을 의무화하는 ‘ESPR’, 우리말로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을 2024년 7월 발효하고 제품군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제품의 수리 가능성을 높이고, 부품과 수리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개정을 통한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의 법제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품 공급 부족, 비싼 수리비,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인 A/S 구조로 인해 소비자가 직접 고쳐 쓸 권리를 체감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명확하다. 소비자가 실제로 ‘고쳐 쓸 권리’를 누리려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수리 공간과 수리 정보, 적정한 가격의 부품과 수리 서비스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수리권의 보장과 확립은 우리 사회의 물건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대량 생산이 보편화하면서 우리는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많은 자원과 노동의 가치를 잊은 채 살아간다. 쉽게 사서 쓰다 쉽게 버리는 문화 속에서 제품들은 엄청난 양의 전자 폐기물과 온실가스로 되돌아온다. 고장 난 물건의 나사를 조이고, 손때 묻은 물건을 닦고 수명을 연장하는 행위는 단순한 절약을 넘어 자원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구 환경과의 지속 가능한 연결고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원 순환을 실천하는 길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첫째, 물건을 구매하기 전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고쳐 쓸 수는 없을까?”를 스스로 질문해보는 일이다. 둘째, 고장 난 가전이나 의류를 무조건 버리기보다 수리 상점이나 리페어 카페에서 직접 고쳐 보는 노력이다. 셋째, 내게는 필요 없지만, 여전히 쓸모 있는 물품들을 동네 나눔 매장이나 중고 거래를 통해 다른 이의 손에서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에펠탑의 낡은 철 조각이 올림픽 메달로 빛났듯, 쉽게 버려지던 물건이 나의 정성으로 다시 쓰임을 얻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자원순환이다. 진정 가치 있는 삶은 끊임없이 새것을 소유하는 풍요에 있지 않다. 이번 자원 순환의 날을 계기로, 낡은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시민들의 작은 실천이 우리 사회와 신음하는 지구를 되살리는 소중한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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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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