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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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의 신앙단상] 신앙은 따뜻한 기억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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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은 주로 어린 두 딸과 함께 토요일 오후 어린이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주일 미사 참여를 한다. 주일 교중 미사에 참여하는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작년 어느 주일에 교중 미사를 참여하게 되었다.

그날 우리 가족 앞쪽에 앉아 계셨던 노부부의 바깥 어르신께서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대성당 출입문을 확인하셨다. 그러다가 미사가 시작되기 거의 직전 얼굴이 환해지며, 급히 들어오는 젊은 부부를 맞이하시는 것을 보았다. 미사 후 알게 되었는데, 그 바깥 어르신께서 환하게 맞이하셨던 젊은 부부는 아들 내외였다.

얼굴이 환해지시던 그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신 나의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소 외할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하고 진지하며 근엄하신 분이었다. 어린 시절, 한 시간 거리에 살던 우리 가족은 종종 다 함께 외할아버지의 본당에서 교중 미사를 드렸다. 평소의 엄하신 성정이라면 손주들이 미사 시간에 조금 늦거나 긴 시간을 지루해할 때 불호령이 떨어질 법도 했지만,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성당에 늦게 도착해도, 몸을 배배 꼬며 힘들어해도 그저 작은 미소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미사가 끝나면 항상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다.

나에게 소화 데레사(아기 예수의 데레사)라는 본명을 지어주신 외할아버지는 신앙심이 참 깊으신 분이었다. 사목회장을 할 정도로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셨던 분이 유독 강조하셨던 건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을 험담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일상 속의 ‘실천하는 가톨릭’이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뾰족한 마음으로는 아이들을 온전히 품어낼 수 없다는 그 말씀처럼, 평소 엄격하셨던 분이 성당에서만큼은 손주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우셨던 것도 당신만의 깊고 따뜻한 신앙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부모의 자리에 서보니 그 너그러움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주 실감한다. 초등학교 2학년 첫째와 일곱 살 둘째를 데리고 미사에 참여하다 보면,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 않고 자꾸만 장난치며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분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거룩해야 할 미사 시간에 나는 자꾸만 아이들을 나무라고 단속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앞자리의 노부부와 옛날 외할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미사 내내 미동도 없이 완벽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매주일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성당에 나와 그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까.

앞자리의 노부부가 헐레벌떡 뛰어온 아들 내외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던 것처럼, 그토록 엄격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성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언제나 다정함으로 품어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잦은 잔소리와 꾸중보다는, 부모와 함께 성당에 머물렀던 그 따뜻하고 평온한 시간의 기억을 토대로 스스로 신앙을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녀들을 보며 웃어주시던 외할아버지의 마음도, 아마 지금의 나와 같은 간절하고 따뜻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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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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