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를 상징하는 꽃이 있다. 바로 ‘프리틸라리아’다. 사랑·희망·열정 같은 밝고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꽃도 있는데 프리틸라리아는 어쩌다 순교자의 고통과 희생을 상징하게 되었을까. 꽃의 팔자(?)가 어쩐지 기구하게 느껴져 측은한 마음이 든다. 아마도 짙은 자줏빛의 어두운 꽃 색깔과 땅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게 하고 이들이 속절없이 흘린 검붉은 피를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프리틸라리아를 보면 하느님께서 작은 꽃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꽃잎의 격자무늬가 굉장히 정교하고 섬세하다. 이런 독특한 외모 덕분에 영어권에서는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린다. 가장 대표적인 일반명은 ‘뿔닭꽃’으로, 이는 꽃잎이 뿔닭의 줄무늬 깃털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라틴어 학명 프리틸라리아 멜레아그리스(Fritillaria meleagris)의 종소명 멜레아그리스도 뿔닭·칠면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μελεαγρίς’에서 유래했다. 또 길쭉한 꽃줄기 끝에 달린 얼룩덜룩한 무늬의 둥그스름한 꽃이 뱀의 머리를 연상시켜 ‘뱀머리꽃’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이유로 ‘사두(巳頭)패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한센병환자의 백합’·‘라자로의 종’·‘죽음의 종’ 같은 다소 섬뜩한 이름도 있다. 이는 과거 한센병환자들이 지니고 다녔던 작은 종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그들이 겪었던 차별과 박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당시 한센병환자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았으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갈 때는 그들이 먼저 피할 수 있도록 종을 울려야 했다.
한편 이런 전설도 있다. 예수님 수난 전 프리틸라리아는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고 핀 순백색 꽃이었다. 프리틸라리아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도 꼿꼿하게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며 어둠이 온 땅에 덮이고 모든 피조물이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보고서야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기 시작했고, 애도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꽃을 어둡게 물들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고개 숙인 프리틸라리아를 꼭 안쓰럽게만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수난과 희생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기에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죽음을 쓸쓸하고 덧없는 희생이 아닌 열절한 사랑과 영광으로 기억하듯, 어쩌면 프리틸라리아는 순교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랑·희망·열정을 이야기하는 당찬 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