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막서 걸인들과 음식 나누는 최귀동 할아버지 보고 큰 깨달음
20여 개국서 공동체 성장… “가장 작은 이 곁에 서는 것” 소명
1976년 9월 걸인 최귀동 할아버지와 새 사제 오웅진 신부의 만남으로 시작된 꽃동네가 50주년을 맞이했다. 걸인 18명을 돌보며 시작한 꽃동네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 20여 개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을 보듬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꽃동네는 지난 50년을 함께해준 은인과 봉사자, 후원 회원을 초대해 8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후에는 중소기업중앙회 후원으로 음악회 ‘러블리 콘서트’를 마련했다.
50주년 미사에 앞서 4일 음성 꽃동네 대성당에서 꽃동네 설립자이자 재단 이사장인 오웅진 신부를 만났다. 여든을 훌쩍 넘긴 사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예수 성심의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했다. 반세기 전 이야기를 그는 어제 일처럼 꺼냈다.
“내가 1976년 5월에 정진석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8월에 무극성당에 부임했어. 그리고 9월에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난 거야. 깡통을 들고 절뚝거리며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대체 어디를 가나 하고 뒤를 따라갔지.”
최 할아버지가 들어간 곳은 용담산 아래 움막이었다. 그곳엔 동냥할 힘조차 없는 걸인 열여덟 명이 누워 있었고, 최 할아버지는 자신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얻어 온 밥을 그들에게 나눠 먹이고 있었다. 오 신부는 그날 밤 성당에서 밤을 새워 기도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야. 그때 깨달았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자기 모든 것을 바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거였어.”
꽃동네의 첫 문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다음날 오 신부는 가진 것을 다 털어 1300원을 모았다. 그 길로 시멘트 한 포를 사서 냇가에서 모래를 퍼 날라 벽돌을 찍었다. 신자들과 주변 사람들도 힘을 보탰다. 그해 11월 움막에 서 추위를 견디던 걸인들은 ‘사랑의 집’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사랑의 집을 지은 이후 오 신부는 1978년 특별한 체험을 했다. 오 신부가 차를 타고 청주교구청으로 가던 중, 증평 한 다리 위에서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평소에도 거리에서 만난 걸인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오 신부는 그를 일단 차에 태웠다. 창문을 모두 열었는데도, 오물을 뒤집어 쓴 걸인에게서 나는 냄새를 오 신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냄새 때문에 내가 토할 것 같고 죽겠는 거야. 그래서 기도했지. ‘하느님 제가 이분을 차에 태우긴 했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그때 하느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을 들었어. ‘오늘같이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내 이름으로 맞아들이면,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져 주겠다’고 하신 거야. ‘아, 나는 돕기만 하면 되는구나. 걱정이 없겠구나!’ 했어.”
하느님 말씀을 믿고 그는 가난한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맞아들였다. 꽃동네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봉사했고, 이름 모를 이들이 주머니를 털어 후원금을 보탰다. 오 신부는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꽃동네가 꿈꾸는 세상은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처럼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세상’이다. 그 꿈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 신부는 “길가에서 얼어 죽어가던 걸인들을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기도 했는데,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많았다”면서 “그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대세를 주고 기도하며 떠나보낸 그들의 이름은 지금도 기일마다 꽃동네 미사에서 한 명 한 명 불리고 있다.
꽃동네의 반세기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에는 비리 의혹이 제기되며 오 신부가 기소돼 오랜 법정 공방을 겪었다. 이후 대법원은 업무상 횡령과 보조금 관련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오 신부는 그 시간을 “큰 고통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었으니 감사드린다”고 돌아봤다.
“내가 내 이름으로 뭘 가져서 뭐하겠어. 나한텐 주님뿐이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과 수품 성구인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으로 살아왔어.”
50년 사이 가난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사회복지 제도가 생기고 정책이 갖춰졌지만,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버려지고 있다. 가족도, 장례를 치러 줄 이도 없는 무연고 사망자들은 계속 늘고 있다. 꽃동네 낙원묘원에선 무연고 사망자를 무료로 봉안당에 모신다.
“우리 마음에서 사랑이 없어지는 게 문제야. 예수님께선 ‘나는 너만 사랑한다. 네가 죄가 있든 없든 너만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잊어선 안 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해.”
100주년을 향해 가는 꽃동네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가난한 이들, 가장 작은 이들 편에 서서 그분들과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께서 아직 맡겨두신 마지막 소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또다시 ‘사랑’을 말했다.
“‘네가 죄가 있든 없든 나는 너만을 사랑한다’는 예수 성심의 사랑을 세상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거야.”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