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5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한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지진도 쓰나미도 전염병도 종교와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그 피해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재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가혹하다. 같은 태풍이 불어도 바닷가 허름한 집은 통째로 날아가지만 도시의 콘크리트 집은 창문 몇 장 깨지고 만다. 재난은 특히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일부 무슬림 지역에서는 성별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진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랬다. 정부는 즉각 대피 명령을 내렸다지만 많은 여성이 피하지 못했다. 여성들은 집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아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고 경고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확성기 방송을 들었어도 집에 남자 가장이 없으면 스스로 대피를 결정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피신하던 여성들도 수영을 배운 적 없고 머릿수건 같은 전통의상이 급류와 잔해에 걸려 피해가 더 커졌다고 한다.

파키스탄 지진 현장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산골 마을 여성들은 크게 다쳤어도 남자 의사의 치료를 극도로 꺼렸고, 약 한 알도 신중해야 하는 임신부조차 상태를 말해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 우리 팀에는 여자 의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당시 경험이 부족한 내가 국제긴급구호팀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이들에게 서양 남성 요원보다 아시아 여성인 내가 한결 편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무슬림 지역에서 문화 이해는 예의를 넘어 생명을 살리는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현지 관습을 틀린 것으로 단정하고 우리 가치관을 밀어붙이는 접근은 백해무익하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 무슬림의 여성할례를 악습이라고 비난하면 그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다. 대신 그것이 여성의 생명과 건강에 왜 위험한지 의학적, 인간적으로 설명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구호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자’라는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다.

구호 물품도 그렇다. 돼지고기나 할랄 기준에 맞지 않는 음식이나, 현지인이 꺼릴만한 옷을 피해야 한다. 반대로 기도용 작은 담요나 기도 전 세정을 위한 비누와 물통처럼 신앙을 존중하는 물품은 크게 환영받는다.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을 전도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부 단체가 구호 물품 속에 성경을 넣었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이 무모한 행동은 다른 구호 요원들의 안전을 위협했고, 어렵게 쌓은 주민과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뻔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도와야 해요?”

내 대답은 한결같다. 그래야 한다. 그들 역시 하느님이 창조하신 귀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무슬림도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애통해하며,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가톨릭교회는 무슬림을 하느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공유하는 형제자매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도움을 주러 왔다”가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형제들과 함께하러 왔다”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무슬림 지역에서 일할 때마다 내 신앙이 더 단단해짐을 느낀다. 이 소중한 교회의 가르침과 현장에서의 깨달음 덕분이리라.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9-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15

필리 2장 14절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