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아버지 팔순 잔치에서 축사를 읽어야 한다면 어떨까. 원고지 두 장 남짓, 길지 않은 분량인데 첫 문장이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AI에게 아버지의 고향과 평생 몸담았던 일, 그리고 ‘감사와 그리움’이라는 단어 두 개를 건네 본다.
몇 초 뒤 화면에는 흠잡을 데 없는 축사가 떠오른다. 문장은 매끄럽고, 마침표 하나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그 글 어디에도, 어릴 적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새벽 시장을 따라나섰던 기억은 없다. 완성된 글이지만, 내 글은 아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 심리학과와 퀘벡 인공지능연구소 밀라(Mila)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은 2026년 1월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 10만 명과 여러 생성형 AI에게 같은 과제를 냈다. 서로 뜻이 최대한 멀리 떨어진 명사 열 개를 나열하는 과제였다. 단어 사이의 의미 거리를 계산해 점수를 매겼고, 점수가 높을수록 더 창의적이라고 보았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여러 AI 가운데 챗GPT는 평균적인 사람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사람 10만 명 가운데 가장 창의적인 상위권만 따로 골라 AI와 다시 겨루게 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떤 AI도 이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 상위권에 평소 글을 많이 다루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짧은 시와 영화 줄거리를 직접 쓰게 하는 실험도 함께 진행했다. 이번에도 사람이 쓴 글이 AI가 쓴 글보다 더 넓은 의미의 폭을 담아냈다. 사람과 AI가 쓴 글을 컴퓨터로 다시 비교해 보니, 점수가 비슷할 때조차 둘은 서로 다른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결과는 닮아도, 글을 짓는 방식 자체가 서로 달랐다는 뜻이다.
우리말에는 재미있는 낱말이 하나 있다. ‘짓다.’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이름을 짓고, 시를 짓는다. 짓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엮어 그 자리에 없던 무언가를 세우는 일이다. AI도 짓는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정교하게 이어 붙인다. 그러나 그 결합에는 이유가 없다. 왜 하필 그 단어였는지, AI는 알지 못한 채로 그럴듯하게 조합할 뿐이다.
인간이 짓는 것은 다르다. 자전거 뒷자리에서 붙잡았던 아버지의 허리, 새벽 시장의 비린 냄새, 그사이 희끗해진 머리카락. 이 모든 것이 문장 하나하나에 이유를 준다. 인간의 창작은 결합이 아니라 사연이다. 겪은 일 가운데 잊히지 않는 것을 붙들어, 왜 그것이 여전히 자신에게 남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일이다.
그 설명이 곧 의미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짓고 제사를 지어 왔다. 우연히 일어난 일에도 뜻을 붙이고, 뜻밖의 만남에도 섭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오래된 습관이다.
그날 밤 필자라면, AI가 써 준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쓸 것이다. 완성도는 떨어지겠지만, 그 글에는 새벽 시장과 자전거 뒷자리가 있을 것이다. 매끄러운 문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이 누구의 삶에서 왔는가이다.
AI는 오늘도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그 조합에 이유를 붙이고 사연을 엮어 마침내 의미를 짓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당신이 지은 마지막 문장은 무엇으로부터 왔는가. AI가 창작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의미를 짓는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