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스테어 계곡의 장크트 요한 베네딕도회 수녀원. 뒤로 해발 2882m의 피츠 라트가 솟아 있다. 8세기 카롤루스 왕조 시대에 세워졌으며, 왼쪽의 작은 독립 건물이 약 785년 건립된 성 십자가 소성당이다. 오른쪽 흰색 성곽 모양 건물은 958~960년경 세워진 플란타 탑으로, 알프스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방어탑 중 하나다. 1499년 칼벤 전투 후 플란타 아빠티사가 개축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알프스의 수도원은 때로 너무 고요해 그 자리에 얼마나 많은 역동적 역사가 서려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스위스 동쪽 끝 마을 뮈스테어의 장크트 요한 베네딕도회 수녀원도 그렇습니다. 한 번쯤 달력 사진에서 본 수녀원이지요.
뮈스테어를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취리히에서 기차를 여러 차례 갈아탄 뒤 체르네츠에서 노란 우편 버스에 올라 해발 2149m의 푸오른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뮈스테어 계곡에 다다릅니다. 이곳은 말도 조금 다릅니다. 로마 제국 시기 알프스 지역에 전해진 구어 라틴어가 토착어와 섞이며 형성된 로망슈어를 쓰는데,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의 먼 친척쯤 되는 말입니다.
이런 외진 곳을 굳이 가야 하나 싶지만, 계곡에 들어서면 천 년 넘게 순례자의 발길을 붙잡아온 이유를 이내 알게 됩니다. 계곡 끝에서 몇 킬로미터만 더 가면 이탈리아 남티롤로 이어지는데,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오갈 때 들를 만한 곳입니다.
수녀원 성당 주 제대와 세 개의 후진. 9세기 카롤루스 왕조 시대 벽화 위에 12세기 로마네스크 회화가 일부 겹쳐 있다. 중앙 후진에는 그리스도의 현현과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순교 이야기, 왼쪽 후진에는 성 베드로·바오로 사도, 오른쪽 후진에는 성 스테파노와 관련된 장면들이 펼쳐져 있다.
교역 중심지에서 깊은 영적 쇄신 공간으로
뮈스테어 수녀원은 알프스의 눈보라 속에서 탄생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출발했습니다. 774년 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 왕국을 정복한 카롤루스 대제는 북쪽으로 돌아가던 길에 해발 2501m의 움브라일 고개에서 거센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그는 무사히 산을 넘게 해주신다면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하느님께 서원했고, 산을 넘은 뒤 약속대로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중세 초기 수도원은 왕권과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특히 카롤루스 시대의 수도원은 단순히 수도자들이 기도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교육, 농업 개척, 필사와 지식 보존, 그리고 광대한 왕국을 관리하는 행정 거점이었습니다. 뮈스테어 수도원도 쿠어 주교 관할 아래 이러한 역할을 맡았는데, 라인강 유역과 이탈리아 남티롤 등을 잇는 교역로와도 가까워 기도의 집이자 고갯길을 넘는 이들의 쉼터, 교역의 중심지였죠.
10~12세기에 들어 카롤루스 왕국의 통합력이 약해지고 지역 귀족과 주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수도원의 역할도 변했습니다. 동시에 교회 개혁 운동과 함께 더욱 깊은 기도와 영적 쇄신을 추구하는 수도 생활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뮈스테어도 변모했습니다. 12세기경 제작된 종에 새겨진 “감미로운 소리가 나면 경건한 자매들이 모여들리라”라는 문구로 보아, 그 무렵 수녀원으로 탈바꿈한 것 같습니다.
중앙 후진과 북쪽 후진 사이의 벽면에 그려진 성체 성혈 기적(1597). 13세기 하엥가딘 출신의 기사 딸인 아녜스 수녀가 겪은 성체 성혈 기적을 그림으로 옮겼다. 수녀들의 성 목요일 영성체, 성체 성혈 기적, 아녜스 수녀의 회개와 고백, 성체 성혈 공경 장면을 볼 수 있다.
성경 속 구원의 서사 담긴 벽화
체르네츠에서 출발한 우편 버스가 마을에 다다르면 그라우뷘덴 특유의 전통 가옥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두꺼운 벽과 깊은 창, 주거와 축사를 한데 묶은 구조는 긴 겨울을 견뎌온 산악 생활의 흔적입니다. 회벽을 긁어 무늬를 낸 스그라피토 문양과 로망슈어 문구,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길은 이곳이 오래전부터 사람과 언어, 문화가 오가던 알프스의 경계였음을 보여줍니다.
수녀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합니다. 흰 벽의 건물, 안뜰, 플란타 탑이 차례로 눈에 들어옵니다. 탑 옆에는 쿠어 주교의 별궁으로 사용되던 건물이 있습니다. 이런 복합 단지 모습은 중세 수도원이 지역 교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9세기 카롤루스 시대의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다윗 이야기부터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부활과 승천까지 성경의 구원 역사가 벽면을 따라 펼쳐집니다. 글을 읽기 어려웠던 중세 사람들에게 이 벽화는 돌과 회벽 위에 펼쳐진 성경책이었습니다.
성 십자가 소성당. 785~788년경 건립된 카롤루스 왕조 시대 2층 구조의 건물로 수도원 성당처럼 세 개의 말굽형 후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펼쳐져 클로버잎 같은 독특한 평면을 지녔다. 초창기 수도원의 장례용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살과 피로 변한 ‘성체 성혈의 기적’
주 제대 주변은 9세기 벽화 위로 12세기 로마네스크 회화가 겹쳐, 1000년이 넘는 신앙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중앙 후진과 북쪽 후진 사이에는 뮈스테어를 중세 순례지로 만든 성체 성혈 기적의 벽화도 보입니다.
15세기 필사본 「기적의 성체 이야기」에 따르면, 13세기 초 아녜스 수녀가 성 목요일 영성체 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성체를 삼키지 못하고 베일 속에 간직했는데, 이후 성체가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뮈스테어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고, 성체 성혈 공경은 수녀원의 중요한 영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체 성혈 신심은 격변의 시대를 건너는 신앙의 버팀목이었습니다. 15세기 말, 알프스 길목을 두고 합스부르크 왕가와 자치권을 지키려는 그라우뷘덴 산악 공동체가 충돌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수도원이 불타고 수녀들은 메라노로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이내 돌아와 무너진 수녀원을 다시 세우고 기도의 삶을 이어 갔습니다. 종교개혁으로 주변 마을이 신교로 돌아섰을 때도 뮈스테어는 그대로 가톨릭 신앙을 지켰습니다.
1799년 프랑스군이 수도원을 약탈한 뒤 성체 성혈 유물은 사라졌습니다만, 신심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에도 두 번의 세계 대전 중 국경의 주인이 바뀌고, 수녀원 문턱까지 군대가 오갔지만, 안에서는 같은 시간에 종이 울리고 기도 소리가 낭랑히 들려왔습니다.
뮈스테어는 카롤루스 시대 수도원의 전통을 여성 베네딕도 공동체가 이어받은 드문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는 예외라기보다 중세에 성장하던 여성 수도 생활의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시 수녀원은 귀족 여성들이 신앙과 교육·문화를 펼치는 공간이었고, 수녀원장인 아빠티사도 지역 사회에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신앙을 지켜온 힘은 세속적 영향력이 아니라, 수백 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기도해 온 여성들의 작고 끈질긴 충실함이었습니다. 이곳의 고요함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느끼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순례 팁>
※ 스위스 체르네츠 역, 이탈리아 말스 역에서 매시간 우편 버스 811번 운행(각각 1시간, 25분 소요).
※ 수녀원 성당 미사: 주일 및 대축일 9:30, 평일 7:30. 수도원 성당과 박물관 가이드 투어(6월 말~11월 초), 수녀원 게스트하우스 숙박 가능.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