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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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전에 잘 설계하자장난감 ‘순환디자인’ 시대

[육아를삽니다] (하·끝) 버린 뒤에야 시작되는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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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재활용, 생산자 책임 커져
설계 단계부터 업사이클 고려해야
가정·기업 함께 자원순환 동참 필요




아이의 손을 떠난 장난감은 어디로 갈까. 고장 난 자동차는 바퀴가 멈추고, 싫증 난 인형은 더 이상 아이 손에 들리지 않는다. 쓰임을 다한 장난감들이 하나둘 방 밖으로 나온다.
다른 이에게 물려주거나 중고로 팔 수 있다면 다시 쓰인다. 그러나 고장 났거나 다음 주인을 찾지 못한 장난감은 ‘버릴 것’이 된다. 특히 플라스틱 몸체 안에 모터와 전자부품이 뒤섞인 장난감은 버리기는 쉬워도 자원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육아를 삽니다’는 앞선 두 차례 보도에서 아이를 위한 소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 물건이 꼭 새것이어야 하는지를 짚었다. 마지막 편의 질문은 쓰임이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장난감 재활용 비영리민간단체 사단법인 ‘트루’ 직원들이 작업장에 들어온 폐완구 중 재사용 가능한 장난감을 선별하고 있다.
 
박준성 트루 이사장


버리기는 쉽지만, 되돌리기는 어렵다

지난 6월 경기 고양시 사단법인 트루(Toy Recycle Union) 작업장. 자동차와 블록, 모빌과 유아용 완구가 담긴 상자가 곳곳에 쌓여있다. 트루 직원들은 장난감을 하나씩 꺼내 다시 쓸 수 있는 것을 골랐다. 이날은 한 업체가 폐업하며 폐기될 뻔한 물량도 들어와 있었다. 손을 거치지 않으면 매립되거나 소각될 것들이었다. 다시 쓸 수 있는 장난감은 닦고 고쳐 새 주인을 찾는다.

문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들이다. 금속 나사나 모터, 전자기판 등이 얽혀 있는 장난감을 재활용하려면 사람이 일일이 뜯어 재질별로 나눠야 한다.

트루는 손이 많이 가는 이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교육으로 바꿨다. 아이들이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 몸체를 열면, 한몸이었던 장난감이 모터와 전선, 회로판, 고무와 플라스틱으로 흩어진다.

박준성 트루 이사장은 “장난감을 분해해 그 안을 들여다보는 건 아주 재미있는 환경교육이 될 수 있다”며 “버려지는 것에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될 수도, 재미있는 과학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리페어 카페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리페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요엘 카위턴씨의 아들 튠이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고장 나면, 일단 열어본다

7월 1일 방문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리페어 카페. 이곳에서도 아이들 손에 드라이버가 들려 있었다. 테이블에는 몸체가 열린 장난감과 흩어진 나사가 놓였다. 한 아버지가 고장 난 소방차 사다리에 접착제를 바르는 동안 아들이 곁에서 유심히 지켜봤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엄마 무릎에 앉은 아이가 직접 드라이버를 돌렸다.

2년 전부터 리페어 카페를 운영해온 요엘 카위턴씨는 아들 튠(5)군과 틈날 때마다 수리 공간을 찾는다. 이날이 50번째 방문인 부자 사이에는 이제 규칙도 생겼다. 장난감 하나를 집으로 가져가면, 다음 방문 때에는 하나를 고쳐 반납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요엘씨는 “아이가 물건 분해도 좋아하고, 잘되면 다시 조립하는 것도 즐긴다”며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작동하는지 감을 잡으면, 그다음은 ‘직접 고쳐보기’로 넘어간다”고 했다.

어른이 대신하면 훨씬 빠르다. 처음엔 요엘씨도 아이가 서툴게 드라이버를 돌리면 “그냥 내가 할게”라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곳을 드나들며 아이가 스스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도록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고장 난 물건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도 달라졌다. “무언가 고장 나거나 부서졌을 때 ‘버려야겠다’가 아니라, ‘직접 한 번 고쳐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버리기 전에, 만드는 법부터

그러나 고쳐 쓰고 싶다고 모든 장난감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접착제로 붙어 몸체가 열리지 않거나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과 금속·전자부품이 복잡하게 얽힌 경우엔 수리도, 재활용을 위한 분해도 어려워진다.

처음부터 고치고 분해하기 쉽게 만들 순 없을까. 네덜란드의 산업디자인 엔지니어 바스 로더스씨는 약 20년간 제조업에서 일하며 장난감 업계 연구개발을 총괄했다. 지금은 기업의 순환경제 전환을 돕는 써코(CIRCO)의 트레이너로 활동한다.

써코는 제품과 사업모델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자원 낭비와 폐기물을 줄일 방법을 찾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3000곳 넘는 기업이 교육을 거쳤다. 핵심은 순서를 바꾸는 데 있다. 어떤 소재를 쓸지, 얼마나 오래 사용할지, 고장 나면 수리할 수 있을지, 수명이 다한 뒤 부품과 소재를 다시 떼어낼 수 있을지 등 소재 선택부터 수리 가능성과 사용 후 분해와 재활용까지 제품을 만들기 전에 고민하는 것이다.

로더스씨는 6월 30일 cpbc와 인터뷰에서 “장난감 산업은 기본적으로 ‘더 많이, 더 빠르게 파는 것’에 치중된 구조”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특별한 ‘선물의 순간’을 자극하며 작고 값싼 장난감을 계속 시장에 내놓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설계 단계부터 고민하면 자원을 낭비하고 오염되는 일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폐기된 제품을 어떻게 처리할지보다, 폐기물이 덜 생기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순환디자인은 여기서 출발한다.



오래 쓰는 제품은 처음부터 다르다

순환은 재활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안전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제품을 만드는 단계가 달라지면 쓰임이 끝난 뒤 남기는 부담도 적어질 수 있다. 지난 7월 2일 방문한 독일 소비자 전문매체 ‘외코테스트(ÖKO-TEST)’는 40년 넘게 생활용품의 유해물질과 안전성 등을 시험해왔다.

카퇴아 퇼레 부편집장은 유아용 가죽 신발을 한 사례로 들었다. 과거에는 크롬을 이용한 가죽 가공이 일반적이었지만, 외코테스트가 관련 유해물질을 지속적으로 검사해온 가운데 최근에는 크롬을 사용하지 않는 가공 방식을 택하는 제조업체가 늘었다고 했다. 외코테스트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집계했을 당시 제품 개선 사례는 2500건을 넘어섰다고 했다.

퇼레 부편집장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제품이 안전하고 내구성이 좋으며 안정적인지 여부”라고 했다. “물건을 끊임없이 사기보다 필요한 만큼 적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중고를 사거나 빌려 쓸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덜 사고 오래 쓰는 소비가 가능하려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 먼저 있어야겠죠.”

이런 책임은 제품 시험에만 머물지 않는다. 독일 전기·전자제품법은 전기·전자 장난감에도 생산자 책임을 적용하고, 제조 단계에서부터 재사용과 분해·재활용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터리나 충전지가 들어간 제품 역시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원칙이다.

독일 연방환경청은 이 같은 ‘제품 책임’이 폐기물 처리에 그치지 않고 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힌다.



버린 뒤의 책임, 생산자에게도

한국에서도 올해 1월 1일부터 플라스틱 완구 18종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에 포함됐다. 2019년부터 정부와 업계의 자발적 협약으로 이어져 온 재활용 책임이 올해부터 생산자의 법적 의무로 전환된 것이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은 본지 질의에 “EPR 시행 후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폐기와 재활용까지 생산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한층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회수된 장난감은 어떻게 될까.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재활용된 폐완구는 어린이가 사용하는 완구류의 유해물질 규제 등의 특성상 청소기 본체와 공기청정기 케이스, 자동차 내·외장재 등으로 쓰인다. 플라스틱과 전지가 함께 들어간 제품은 이를 분리·선별해 각각 재활용한다.

결국 재활용 과정에서도 제품을 처음에 어떻게 만들었느냐가 중요하다.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과 금속·전자부품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수록 분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트루 작업장에서 사람이 장난감 나사를 풀고 부품을 하나씩 떼어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도 PP(폴리프로필렌)·PVC(폴리염화비닐) 등 여러 플라스틱과 금속 나사·스프링, 고무, 도료, 접착제, 전자부품이 함께 사용되는 제품 구조를 재활용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어린이 제품인 만큼 안전성과 내구성, 디자인과 기능을 함께 충족해야 하기에 재활용이 쉬운 소재만 사용하는 데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은 “앞으로 설계 단계에서부터 소재를 단순화하고 분리하기 쉬운 구조로 만드는 등 ‘재활용을 고려한 제품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조합은 특히 중소업체의 경우 EPR 대응을 위한 인력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비용과 행정 부담도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에 단순히 ‘재활용 책임’을 부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활용 잘되는 제품을 만들수록 혜택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준성 트루 이사장도 “재활용과 업사이클(upcycle, 재활용을 넘어 더 나은 가치로 되살리는 것) 모두 일이고, 돈도 많이 든다”며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이 쉬운 제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영세한 완구업체를 위한 인센티브와 비용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자의 재활용 책임은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남은 과제는 그 책임이 ‘버린 뒤 얼마나 재활용할 것인가’에서 ‘처음부터 어떻게 만들 것인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느냐다.



아이들이 살아갈 곳

장난감을 덜 사고, 물려 쓰고, 고쳐 쓰는 일은 가정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고장 나면 고칠 수 있게 하고, 쓰임이 끝난 뒤 다시 자원으로 돌리는 일까지 부모와 아이에게 맡길 수는 없다. 기업의 생산 방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세대 간 연대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159항)고 강조했다.

지난 2일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가 발표한 새 문헌 「공동의 집 돌보기」에서도 “공동의 집을 충분한 지혜와 주의를 기울여 단기·중기·장기적 안목으로 돌보지 않는다면, 피조물을 해칠 뿐 아니라 이웃,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미래세대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97항)고 경고했다.

박 이사장은 분해한 장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난감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거든요. 실제로 아이들의 추억과 사랑이 담겨 있고요. 그런데 함부로 버려져서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오염시킨다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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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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