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인공 임신중지 약물, 이른바 '낙태약물'을 정식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임신 9주 이하 여성을 대상으로 이르면 내년 초 도입한다는 목표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정부가 마련해야 할 것은 낙태약 확대가 아니라, 위기 여성을 위한 지원 로드맵"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정민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정부는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임신 9주 이하 여성을 대상으로 인공 임신중지 약물을 국내에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만입니다.
정부는 제도적 공백 속에서 약물이 음성적으로 유통되면서 여성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며 도입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한성숙 국무총리 /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
"제도적 공백이 이어지면서 일부 여성들은 위험한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도입 초기 2년 동안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약물을 조제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이후 약물의 부작용과 안전성 등을 살핀 뒤 접근성을 높여 나갈 계획입니다.
<신준수 /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
"약사에 대해서는 법무부에서 형법상의 처벌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이 있어서 2년 동안 안전하게 의사가 직접 조제하는 방식으로 (도입하려고 합니다)."
약물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처방 가능한 의사의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성명을 통해 "임신 9주든, 병원과 약국에서든, 이 약물은 자궁 안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주교회의는 '단계적 도입'에 대해서도 "낙태약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고 일상화하는 첫걸음"이라며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은 낙태약을 확대하는 로드맵이 아니라, 위기에 놓인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지원의 로드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약물을 제공하는 체계를 마련하기에 앞서, 여성이 출산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부터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문창우 주교 /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장>
"위기에 놓인 여성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지원 로드맵 차원 안에서 성폭력 피해자 보호나 한부모 가정 지원이나 출산 이후에 양육 지원이나 또 위기임신 상담이나 충분히 그런 안전망이 확보가 되지 않은 선상에서 너무 급하게 이번에 조치에 대한 내용들이 발표가 돼서 좀 당황스럽습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 신부도 약물 도입보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미성년 임신부 등 제도권 밖에 놓인 이들이 배제되지 않고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과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석준 신부 /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학교에서 만일에 미성년 아이들이 임신을 했다 그러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자퇴를 권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너를 안 받아주겠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좀 인식적인 전환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사실 성평등가족부에서 얘기하는 것들 중에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어요."
정부가 종교계와 의견을 나눴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나 협의가 없는 사실상의 통보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오석준 신부 /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9주라는 말 표현 자체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정부쪽에서도 설명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설명이 없었다는 것도 되게 아쉽긴 하고요. 종교계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하긴 하지만 거의 통보식이죠."
한국 천주교회는 신념에 따라 낙태 시술과 약물 처방을 거부하는 의료인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을 촉구하는 한편, 낙태약물의 문제점을 알리는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CPBC 이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