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스한 화단 앞, 아이가 쭈그려 앉아 장미 한 송이에 손을 뻗는다. 손끝에 닿는 매끄러운 꽃잎의 감촉,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기, 손가락에 살짝 묻어나는 이슬. 이 감각들이 뒤섞이는 순간, 아이는 비로소 ‘장미’를 알게 된다. 이 앎은 누구도 말로 다 가르쳐 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AI에게 “장미를 아느냐”고 물으면, 막힘없이 색과 향과 촉감까지 유려하게 설명한다. AI는 정말 장미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장미에 대한 말들을 알 뿐일까.
오하이오주립대학교와 홍콩이공대학교를 비롯한 공동연구진은 2025년 6월, 이 물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4,442개 영어 단어를 놓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축적해 온 대규모 언어 평가 자료와 질문에 답을 내놓는 생성형 AI인 오픈AI의 챗지피티(GPT-3.5, GPT-4), 구글의 팜(PaLM2)과 제미나이(Gemini)의 응답을 나란히 비교했다.
비교한 특성은 세 갈래였다. 우선 어떤 단어가 좋은지 나쁜지, 흥분되는지 차분한지, 크기는 얼마만 한지처럼 몸의 감각이나 움직임과 관련 없는 차원을 비교했다. 또한 촉각과 청각, 후각, 시각, 미각 같은 오감으로 경험하는 차원을 비교하면서, 손과 발, 입, 몸통을 움직여 경험하는 운동 차원도 비교했다. 쉽게 말해 머리로 판단하는 것, 감각으로 느끼는 것, 몸으로 행하는 것을 따로 물어 비교한 셈이다.
결과는 차이를 분명히 보여 줬다. 몸과 직접 닿지 않는 차원에서 AI는 인간과 매우 비슷하게 답했다. 그러나 냄새와 촉감을 묻는 감각 차원에서는 일치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손발과 몸통을 움직여 경험하는 운동 차원에서는 인간과의 유사성이 거의 사라졌다. 이미지까지 배운 GPT-4와 제미나이는 시각 차원에서는 살짝 나았지만 운동 차원에서는 똑같이 무력했다.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연구진이 처음 “당신은 이것을 얼마나 경험하는가”라고 묻자, AI는 몸이 없어 냄새 맡거나 만질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질문을 “인간이라면 얼마나 경험할까”로 바꿔야 했다. AI 스스로 몸이 없다고 고백한 순간, 이 연구의 결론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인식과 체감은 다르다. AI의 인식은 방대한 텍스트에서 패턴을 뽑아내는 일이다. 인간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양을 아득히 뛰어넘는 글을 학습하고도, AI는 장미 한 송이의 향기를 몸으로 겪은 적이 없다. 반면 인간의 체감은 몸을 통과한다. 손끝으로 만지고 코로 맡고 발로 걸어 본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개념이 완성된다. 이것이 체화된 인지, 곧 몸이 체감의 통로라는 오래된 통찰이다. 향기를 맡아 본 적 없는 이가 아무리 유창하게 향을 설명해도, 그것은 체감이 아니라 체감의 흉내일 뿐이다.
우리는 요즘 몸을 쓰는 일을 점점 줄여 간다.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다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수를 손끝에 찍어 이마에 긋고,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이웃과 손을 맞잡아 인사하는 몸짓에는 말로 옮길 수 없는 체감이 담겨 있다. 몸을 움직여 살아낸 시간만이 진짜 체감을 빚어낸다. 오늘 당신은 세상을 얼마나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가. AI가 인식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체감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