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9월 25~28일 프랑스 사목방문을 통해 인공지능(AI)과 생명윤리, 이민자와 난민, 세계 평화 등 우리 시대 인류가 마주한 문제들에 두루 메시지를 전했다.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교황의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는 사실이다.
교황은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AI가 인간의 수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존엄한 존재인지 깊이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은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이 메시지는 루르드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교황은 병자와 장애인들에게 “인간은 영원을 향한다는 사실만으로 존엄하다”며 인간 존엄은 측정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최근 조력사를 합법화한 프랑스에서 “거짓된 연민을 가장해 죽음을 초래하려는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료의 존재 이유는 고통받는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데 있다며 따뜻한 동반도 요청했다.
여기에 가톨릭교회 생명윤리의 본질이 있다.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죽음을 막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통받는 사람 곁을 지키고,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한 존재임을 느끼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AI 시대의 역설은 기계가 점점 인간처럼 되어가는 동안, 정작 인간은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기술의 잣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병들고 늙고 일할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의 가치까지 줄어들 순 없다.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진보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뛰어난 기계만이 아니라, 어떤 인간도 쓸모없는 존재로 밀려나지 않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