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는 이는 분명 ‘살인자’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중순 낙태 약물 도입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현 정권은 태어난 생명과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달리 바라본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현 정부에 “낙태약을 확대하는 로드맵이 아니라, 위기임신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인간 생명은 수정 순간부터 시작하며 태아도 이미 온전한 인간 생명”이라고 재천명했다.
주교회의가 낙태약 도입을 공식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환영한다. 하지만 입장문 발표만으로 인간 생명의 지킴이로서 교회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 독재 정권에 항거해 주교들이 앞서고 성직자·수도자·평신도들이 뒤따랐듯이 스스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생명을 지키는 일에 교회가 더욱 나서야 한다.
사회정의를 외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온 사제와 수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이를 돌보고, 감옥에 갇힌 이를 찾아가는 것과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른 복음의 요구가 아니다. 모두 가장 작고 약한 이의 생명을 외면하지 말라는 하나의 부르심이다.
이 땅에서 연간 3만 명 이상 태아가 낙태로 생명을 잃고 있다. 지금이라도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야 한다. 인간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주님을 따라,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태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반생명적인 제도와 세력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고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