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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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군인, 두 소임의 조화 꿈꾸며 파병 장병들 영적으로 돌봅니다”

[남수단에서 온 편지] - (상) 아프리카에서 체험한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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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성당이 도난 방지를 위해 성모상 주위에 강화유리 및 철망을 설치했다. 여 신부가 철망에 갇힌 성모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한빛부대 제공


아프리카 남수단 보르 지역에는 현재 남수단재건지원단(이하 한빛부대) 21진이 파병돼 있다. 이 부대에는 여상민 신부가 군종장교(육군 소령)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빛부대는 유엔 평화유지활동(UN PKO)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2013년 1월 창설됐다. 여 신부가 남수단 현지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여상민 신부가 피보르(Pibor) 지역 파견 공병부대 위문 및 안전 기도회를 주례하고 있다. 한빛부대 제공


재건 돕고 희망 전하는 ‘한빛부대’

충성!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군 장병들과 함께 남수단재건지원단 한빛부대 21진 군종장교로 해외 임무 중인 여상민 베드로 신부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애정을 담아 교우 여러분께 편지글로 인사드립니다.

남수단재건지원단 한빛부대는 ‘UNMISS (United Nations Mission In South Sudan, 유엔남수단임무단)’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2013년 1월 7일 1진으로 창설되어 오늘날까지 21진(파병단장 대령 이정대)의 파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빛’은 ‘세상을 이끄는 환한 빛’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남수단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밝은 빛이 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남수단 종글레이주 보르 지역에 위치한 한빛부대의 주요 임무는 도로 구축 및 부대 주둔지 정비 등 재건지원 활동입니다. 이와 함께 한빛농장을 통한 현지 주민 농업기술 전수, UN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실 운영 등 현지 문화사업과 재건사업 등 다양한 활동으로 기여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내전의 상흔과 굶주림, 이에 따른 약탈로 불안정한 치안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땅에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저희 모두는 포기하지 않고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남수단의 번영과 희망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빛부대 21진 국기게양식 후 단체 사진. 매일 아침점호마다 장병들과 함께,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남수단에 희망을! 대한민국에 영광을!” 한빛부대 제공


장병들! 빙수와 냉커피 배달 왔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 진행되는 파병 임무에 대한 긴장감과 40°C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 게다가 종종 쏟아지는 폭우와 계속되는 도로 복구 등 인프라 재건과 경계 작전, 그리고 수많은 작업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땀 흘리며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우리 장병들의 국가대표다운 면모를 볼 때마다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우리 장병들이 무더위와 여러 악조건 속에서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도록 시원한 냉커피와 팥빙수를 만들어 현장으로 위문을 다니고, 영적 돌봄을 위해 미사를 비롯한 종교행사를 주관합니다. 또 병영상담관으로 임명받아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며, 회복 탄력성 교육을 통해 장병들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고, 사기가 떨어지는 일 없이 부대 전투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자 노력합니다.

 
여 신부가 여러 임무로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하여 팥빙수를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한빛부대 제공


특히 위문 활동은 다소 몸은 고단해도 마음만큼은 즐겁습니다. 폭염 속에서 만나는 시원한 커피 한 잔에 장병들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현지에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자 설립된 한빛농장 운영에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하여, 도로 및 공항 활주로 보수를 비롯한 여러 임무로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하여 팥빙수를 만들어 배달을 나가곤 합니다.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맛보는 시원한 빙수 한 입은 무더운 하늘을 그 순간만큼은 성모님의 푸른 옷처럼 청량한 하늘로 바꿔줍니다. 보냉팩 가방에 냉커피를 짊어지고 이곳저곳을 걷는 것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고요히 묵상하게 됩니다. 땀으로 흠뻑 젖은 군복 속 우리 장병들의 미소를 볼 때마다, 올해 초 파병 준비단에서 고생했던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한빛농장을 통한 현지 주민 농업기술 전수 사업. 한빛부대 제공


현지 주민들을 가까이 만나고 싶지만

다른 해외 선교사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저 역시 국군의 일원으로서, 유엔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원 중 한 명이기에 단독 행동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파병 군종장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먼 길을 떠나는 군인들과 동행해 이들의 영적·정신적 건강을 돌보고, 특별참모로서 지휘관을 보좌해 부대 안전에 기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물론 마음 같아서는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지신 존경하는 고 이태석 신부님처럼 현지 주민들을 가까이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앞세워 행동했다가 오히려 부대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지혜롭고 현명한 마음으로 대처하려 합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무엇을 위해 내가 여기에 왔는가?’라는 냉철한 판단을 통해 사제로서 느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금 부대원들에게 충실해지려 노력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있는 나는 신부인가? 군인인가?’라는 이분법적 성찰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종신부에게 있어 군인의 신분과 사제의 신분은 마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하나이듯, 둘 다 중요한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묵상을 토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장병들을 통해 모두에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사제의 삶을 살도록 매일 묵주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경비대 작전투입 및 훈련 전 안전 기도회. 여 신부는 ‘육화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며 하나의 임무와 소임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로서 의탁한다고 말했다. 한빛부대 제공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군종신부의 삶은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을 진하게 묵상하기 좋은 현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와 국가의 두 명령 사이에서, 군인으로 사는 삶과 사제로 사는 삶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취해 사람이 되신 ‘육화강생’(肉化降生)의 신비를 묵상하며 하나의 임무와 소임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로 의탁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의 저의 목표는 부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는 장병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임무 수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의 임무를 통해 남수단에 희망과 평화를 안겨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장에서 수시로 맞닥뜨리는 딜레마는 제가 안고 가야 할 소명이요, 누군가와 상의하기 어려운 사제로서의 고민은 저만의 광야 체험이자 겟세마니입니다.

그렇게 ‘파병 사제의 삶은 군인과 현지인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복된 자리’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자, 크나큰 감사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기에 경례 구호와 체력 단련, 주어진 부대 업무를 이곳 선교지에서의 새로운 언어로 받아들이고, 군복은 하느님께서 제게 새롭게 입혀주신 수단이자 제의로 생각하며 착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점호마다 장병들과 함께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남수단에 희망을! 대한민국에 영광을!”

 
 

남수단재건지원단 한빛부대 21진 / 천주교 한빛성당
 

군종장교 소령(진) 여상민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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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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