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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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학생이 봉헌한 작은 선물 받아주신 ‘자애의 성모’ 성지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91. 독일 쾰른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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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구도심에 자리한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St. Maria im Kapitol). 쾰른의 12개 주요 로마네스크 성당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두꺼운 석벽과 낮은 탑, 동·남·북 세 방향으로 펼쳐진 반원형 후진이 특징이다. 11세기에 조성된 이 독특한 구조는 라인 지역 로마네스크 건축의 선구적인 모델이 되었다. 1965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승격됐다.


독일 쾰른대성당을 보면 쾰른을 다 본 듯합니다.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하늘을 찌를 듯한 두 첨탑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겠죠. ‘간 김에 순례’ 10회에서 소개했듯 쾰른대성당은 동방 박사의 성해를 모신 곳으로 쾰른을 대표하는 순례지입니다. 대성당 순례를 했으면, 쾰른에서의 순례는 끝난 것일까요?

구도심에는 대성당 말고도 유서 깊은 로마네스크 성당 12곳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성당이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입니다.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쾰른의 오랜 신앙사를 간직한 성당으로, 시대마다 달라진 신앙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 옛 베네딕도회 수녀원 회랑. 오늘날 성당 골격을 완성한 11세기 이다 아빠티사 시대 베네딕도회 수녀원이었던 공동체는 12세기 귀족 여성 중심으로 바뀌어 1802년 세속화될 때까지 존속했다. 현재 쾰른 대교구 성당이다.


로마 신전 자리했던 터에 봉헌된 성당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 성당은 대성당에서 남쪽으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대성당을 등지고 남쪽으로 10여 분 걸으면 닿습니다. 두 성당의 짧은 길 위에 로마 시대 유적부터 중세와 근현대 건축까지 쾰른의 2000년 역사가 압축돼 있습니다.

넓은 광장 위로 거대한 정면과 첨탑을 드러내는 대성당과 달리,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 성당은 구도심 건물과 옛 회랑 사이에 자리해 한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두 개의 탑이 남아 있지만, 하늘로 치솟기보다 땅에 단단히 붙은 듯해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성당의 정식 명칭을 우리말로 옮기면 ‘카피톨의 성모 마리아’입니다. 카피톨은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에 세워진 중심 신전으로, 유피테르·유노·미네르바를 모시며 로마의 국가 종교와 도시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서기 1세기 쾰른이 ‘콜로니아’로 승격되자, 이 언덕에도 4.4m 높이의 기단 위에 33×29.5m 정도의 카피톨 신전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세운 제국은 모래성과도 같지요. 로마 제국이 기울고 프랑크족이 쾰른을 지배하면서 이곳의 주인도 바뀝니다. 프랑크 왕국의 실력자 페피누스 2세의 부인 플렉트루디스는 말년을 쾰른에서 보내며, 카피톨 신전의 폐허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성당을 세웁니다. 우상이 사라진 자리에 참믿음의 기틀이 세워진 겁니다. 10세기 중엽 이곳에 쾰른 대주교의 지원으로 베네딕도회 수녀원이 설립됩니다.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의 본랑과 레트너. 두꺼운 기둥과 둥근 아치, 평평한 목조 천장이 로마네스크 성당 특유의 단정한 리듬을 만든다. 정면의 화려한 석조 구조물은 16세기 초 제작된 레트너로 본랑과 성직자들의 가대석을 구분하던 가림막이다. 레트너 너머로 삼엽형 기대석과 제대 공간이 이어진다.


황실 지원으로 건축돼 전례 중심지로

성당 앞에 서면 첨탑 대신 두꺼운 석벽과 둥근 후진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서 로마네스크 건축 특유의 묵직하고 안정된 느낌을 줍니다. 서쪽의 상층 구조는 오늘날 아헨대성당을 연상시킵니다. 동·남·북 세 방향으로 둥근 가대석이 펼쳐져 하늘에서 보면 세잎클로버를 닮았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1040년 무렵에 이다 아빠티사가 황실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건축 사업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다는 오토 2세 황제와 비잔틴 출신 황후 테오파누의 외손녀였고, 친오빠 헤르만 2세는 쾰른 대주교였습니다. 1049년에 성 레오 9세 교황이 직접 찾아와 십자가 제대를 봉헌했으니, 이곳이 평범한 수녀원 성당 이상의 위상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12세기에 수녀원은 귀족 여성들의 의전공동체로 바뀝니다. 황실과의 관계보다 이미 강했던 귀족적 성격이 제도적으로 더욱 뚜렷해진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은 도시 전례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쾰른 대주교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를 이곳에서 봉헌했고,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시의회가 이곳에서 출발해 대성당까지 동방 박사를 기리는 행렬에 참여했습니다.

 
후진의 히르츠 소성당과 ‘고통의 십자가’(좌), 헤르만 요제프 성모자상(우). 두 팔이 위로 갈라지는 Y자형 갈래 십자가는 1300년 무렵 호두나무로 제작한 것으로, 수난의 고통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현재의 강렬한 채색은 주로 15세기에 덧입혀진 것이다. 성모자상은 12세기 후반 제작된 작품으로, 성모와 아기 예수가 뺨을 맞댄 비잔틴계 ‘자애의 성모(Eleusa)’ 형식을 보여준다.


성모자상 앞에 놓인 사과

성당 안은 묵중한 기둥과 둥근 아치가 본랑을 차분하게 감쌉니다. 본랑 끝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공간을 구분하던 아름다운 레트너가 있고, 그 뒤로 제대 공간과 가대석이 펼쳐집니다.

가대석에 들어서면 사과 몇 알이 앞에 놓인 성모자상을 만납니다. 훗날 프레몽트레회에 입회한 성 헤르만 요제프는 가난한 학생 시절 이곳에서 기도하다가 자신이 가진 사과를 아기 예수께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이 아기의 손을 움직여 받아주었다고 하지요. 그 후로 쾰른 신자들은 성모상 앞에 사과를 봉헌합니다.

거대한 성당 안 성모자 앞의 소박한 사과는 중세 신앙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모님과 아기 예수를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선물과 기도를 받아주는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였던 것이죠. 더 안쪽의 히르츠 소성당의 Y자형 모양의 ‘고통의 십자가’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내면 깊이 체험하려 했던 수난 신심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치의 방해 속에도 교회 지켜낸 청년들

쾰른 사람들의 이런 개인 내면의 신심은 20세기에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의 체험으로 이어집니다.

나치 정권은 청년들을 국가 조직에 편입시키기 위해 가톨릭 청년단체들부터 해산합니다. 하지만 나치의 감시와 압박 속에서도 이곳 지하 소성당에서는 1939년부터 매주 토요일 밤 젊은이들이 모여 독일어로 끝기도를 바쳤습니다. 전쟁으로 청년들은 전선으로 흩어지고 성당도 폭격으로 크게 파괴됐지만, 공동체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하 소성당의 기도는 전선에 있던 친구들과 시간 기도로 연결되었죠.

당시 보좌 신부이자 쾰른 청년사목 담당이었던 라인하르트 앙게넨트 신부는 이 젊은이들을 “쾰른의 젊은 교회”라 불렀습니다. 청년을 그저 교회를 이어갈 미래 세대로만 보지 않고, 바로 지금 교회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주체로 바라본 것입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우리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자리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순례 팁>

※ 쾰른 대성당에서 장크트 마리아 임 카피톨까지 옛 시청사와 ‘비아 쿨투랄리스’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도보 10~12분, 약 800m, 지하철 U5 Heumarkt).

※ 미사: 주일 및 대축일 9:30(가족미사), 10:30, 평일 18:30(목) / 가이드 투어 (월 2회, 사전 예약).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차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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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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