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해 묵주를 드는 일은 전쟁 피해자의 고통을 우리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묵주기도 성월에 교회가 되새길 것은 기도의 횟수만이 아니다. 기도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하게 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레오 14세 교황이 10월 한 달 동안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황은 보속과 자비의 실천, 대화와 화해를 함께 당부했다. 프랑스 메츠 연설에서도 평화 추구를 순진한 평화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되며, 재무장이 해답이라는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78항은 평화를 정의의 작품이자 사랑의 열매로 설명한다. 총성이 멎어도 존엄이 짓밟히고 피해자가 방치된다면 평화를 이뤘다고 할 수 없다. 민간인을 보호하고 피란민을 돌보며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평화의 토대를 세우는 길이다.
세계 곳곳에는 평화를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성가정본당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피란민 수백 명을 보살펴왔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는 최근 가자지구에 학교를 다시 열었다. 우크라이나 카리타스는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숙소와 법률·심리 지원을 하며 피해자 회복을 돕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묵주기도가 세상의 문제에서 도피하게 하지 않고 이를 책임 있고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맞설 힘을 준다고 했다. 그 힘을 얻은 이는 구호에 동참하고, 혐오의 말을 멈추며, 갈등 속에도 상대의 존엄을 지킨다. 묵주 알을 넘기는 손이 고통받는 이웃에게 내미는 손이 될 때, 우리 기도는 평화를 짓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