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성당 세례식 기념 및 교우 공동체 단체사진. 여 신부는 6월 부대 내 한빛성당에서 7명의 예비신자 군인들에게 세례를 주는 기쁨이 있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남수단 보르 지역에는 현재 남수단재건지원단(이하 한빛부대) 21진이 파병되어 있다. 이 부대에는 여상민 신부가 군종장교(육군 소령)로 파병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빛부대는 유엔 평화유지활동(UN PKO)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2013년 1월 창설됐다.
보르성당에서 이노센트 신부님, 앤서니 신학생과 함께. 한빛부대는 주둔지 인근 보르 성 바오로 성당에 학용품과 생활용품들을 비롯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한빛부대 제공
환한 미소 뒤 숨겨진 가난의 고통
남수단에서의 생활에서 현지 주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단독으로 직접 활동하고 찾아다니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 유엔 기지 내에서 함께 일하는 현지 고용인들과의 만남 또는 부대 출장, 위문활동 과정 안에서 이따금 만남이 허락되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들을 위해 파견된 군종신부 역할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보편 교회 사제로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목자적인 마음가짐을 꺼내볼 수 있는 귀한 순간이지요. 그래서 이분들과도 마찬가지로 시원한 커피와 빙수를 함께 나누며 서로 엄지척 ‘따봉’으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그 뒤로 저를 만날 때마다 손을 흔들며 ‘피터!’(베드로)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렇게 강복을 드리고 나서 기분 좋게 하늘을 올려다보면, 오히려 제가 강복받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얼마 전 부대 인근에 위치한, 지역사회의 교육 거점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보르 성 바오로 성당에서 학용품과 생활용품들을 비롯한 물품 공여식이 있었습니다. 마침 장소가 성당이라 저로선 현지 주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승인을 받아 성당에 기증할 묵주와 영한 성경을 준비해 함께 다녀왔습니다.
철창 안에 계신 성모님. 보르 성당 측은 도난 방지를 위하여 강화유리와 울타리로 둘러놓았다.
콩고에서 선교 사제로 이곳에 오신 이란지 마주네 이노센트 신부님과 앤서니 신학생을 중심으로 남수단 교우들이 환한 미소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성당 교육관에서는 재봉틀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직업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고, 비록 성전은 노후하였지만 감실 속 예수님은 온화하게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현지인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며 성령으로 하나 되는 친교를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 군과 유엔(UN)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이러한 미소 속엔 여전히 굶주림과 가난의 고통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아이들 뒤로 초소 같은 작은 건물이 하나 보였습니다. 가서 살펴보니 성모상이었습니다. 도난 방지를 위해 강화유리와 울타리로 둘러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단에는 ‘QUEEN OF PEACE(평화의 모후)’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초소에 갇혀 계신 성모님과 그 앞에서 공을 차며 뛰놀던 예쁜 눈망울의 아이들,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여상민 신부는 성모님께 이 땅의 모든 이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매일 밤 묵주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은총과 보호를 청한다고 말했다. 묵주를 받고 기뻐하는 현지인들.
건빵 주머니에 두둑하게 넣어둔 묵주
남수단에는 그동안 수많은 선교사들의 노력 덕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으며, 그 중에는 성당을 다니는 신자들도 꽤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건빵 주머니에 후원받은 묵주를 두둑이 넣어두고, 만나는 이들 중 신자가 있다면 강복과 함께 나눠주거나, 혹은 대외 작업에 투입되는 우리 군인 신자들을 통해 묵주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혹여 신자인 척 받아다가 시장에서 장신구처럼 되파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축복받은 성물은 결코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기에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팔아서라도 그 사람의 굶주림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다면, 이곳에서만큼은 이 또한 선교지에서 사람을 살리는 새로운 묵주 기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떠나간 묵주는 성모님께 맡겨드리기로 했습니다.
자애로우신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그 묵주를 만나는 이가 누구든, 고요히 “사랑한다 얘야”하고 속삭여주시겠지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라고 하신 주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여전히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만나는 이에게 강복을 주고 묵주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이 땅의 모든 이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매일 밤 묵주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은총과 보호를 청하곤 합니다.
여 신부가 촬영한 수호천사 같은 형상의 신기한 구름. 그는 하느님께서 한빛 부대원과 남수단 주민 모두에게 축복이 내리기를 기도했다.
현지에서 열린 선물 같은 세례식
따라서 저의 사목적 목표는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현지 종교행사 및 위문활동과 같은 군종 업무를 통해 우리 군인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 남수단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 부대 내 한빛성당에서 7명의 예비신자 군인들에게 세례를 주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출국 전 시작된 교리공부 끝에 이뤄진 아프리카 현지 미사와 세례식은 그야말로 감동이었고, 저를 비롯한 교우 공동체 모두에게 선물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청년들에게 신앙의 힘을 더해줌으로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장병들을 계속해서 양성해나가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선교인 것 같습니다.
우연히 수호천사 같은 모습의 신기한 구름도 촬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 한빛 부대원과 남수단 주민 모두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기를 끌어올리고, 보이지 않는 가교 역할로 남수단 주민들의 삶에 기여하는 파병 사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저희 한빛부대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 파병되어 활동 중인 우리 국군 장병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멀리서 이 글을 보시는 모든 교우 여러분의 영육 간 건강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