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카 성모 탄생 바실리카와 수도원. 1377~1380년 기존 성당 자리에 고딕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1717~1735년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인 개축을 거쳤다. 2011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승격됐다. 옛 성 바오로회 수도원에는 현재 겟세마니 위로자 형제회(CCG)의 총원이 자리하며, 성지와 순례자 사목을 맡아 피정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10월은 묵주 기도 성월입니다. 성모송을 바치며 묵주알을 하나씩 넘기다 보면 단순한 기도가 반복되면서 어느새 하나의 길이 만들어집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모 순례지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바실리카와 광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은 성모상 하나, 그 앞에서 도움을 청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기도가 쌓여 성지가 된 곳이 많습니다. 오늘 가볼 슬로바키아의 성지도 그런 곳입니다.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방문하면 성 마르티노 대성당을 먼저 보게 됩니다. 합스부르크 시대 헝가리 국왕들의 대관식을 올리던 브라티슬라바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입니다. 그런데 새 국왕들이 대성당을 나와 곧장 향한 곳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마리안카(Marianka)로,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순례지이자 옛 헝가리 왕국 최초의 성모 순례지로 꼽히는 곳이지요.
마리안카 성모 탄생 바실리카 주 제대와 본랑. 19세기 후반 대대적인 재고딕화 작업을 거쳐 1877년 네오고딕 날개제대가 새로 설치됐지만, 본랑 천장에는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치장 벽토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장화는 과거 이 성지를 맡았던 수도회의 주보인 첫 은수자 성 바오로의 생애, 특히 성 안토니오와의 만남과 노년기의 일화를 담았다.
은수자가 숨겨둔 성모자상, 200여 년 뒤 찾아
마리안카로 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광역버스로 20분이면 소카르파티아산맥 낮은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에 닿습니다.
11세기 무렵 이 일대에는 배나무를 깎아 왕좌에 앉아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자상을 만들어 모시던 은수자가 살았습니다. 전쟁이 나서 성모상을 속이 빈 나무에 감추고 피신했는데, 세월이 흐르며 그 위치도 잊혔다고 합니다.
1300년 무렵 눈먼 이가 숲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샘을 찾아왔다가 샘물로 눈을 씻은 뒤 시력을 되찾습니다. 눈을 뜬 그 앞에 오래전 사라졌던 성모자상이 보이는 게 아닙니까. 사람들은 성모자상을 나무 기둥 위에 모셨고, 성모 소성당이 들어섰으며 치유를 청하는 이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안카 순례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즉위한 헝가리 국왕이 성지 찾는 전통 생겨
1377년 앙주 가문 출신의 헝가리 국왕 러요시(루이) 1세는 이미 성모 신심이 자리 잡은 이곳의 성당과 그 주변을 첫 은수자 성 바오로회(OSPPE)에 맡깁니다. 사도 성 바오로가 아니라 이집트 사막에서 처음 은수 생활을 시작한 성 바오로의 영성을 따르는 수도회로, 지금도 동유럽 여러 성지에서 순례 사목을 맡고 있지요. 국왕의 후원으로 14세기 말 고딕 성당과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본격적인 순례지로 성장합니다.
16~18세기 브라티슬라바는 헝가리 왕국의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브라티슬라바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마리안카 수도원은 왕실과의 관계가 각별했습니다. 1647년 페르디난트 4세부터 새 국왕이 즉위한 뒤 마리안카 성모님을 찾아가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합스부르크의 레오폴트 1세와 카를 6세도 이곳을 찾았지요. 마리안카 성모님은 ‘헝가리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았습니다.
성모 탄생 바실리카의 날개 제대와 성모자상. 1877년 대주교 건축가 요제프 폰 리페르트가 설계하고 빈의 조각가 요제프 라이머가 제작했다. 제대 중앙에 모셔진 높이 42㎝의 배나무 목조 성모자상은 13세기 말~14세기 전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려한 성전 안에 모셔진 작은 목상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붉은 지붕을 얹은 고딕 성당과 수도원이 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중세 고딕의 골격 위에 바로크와 19세기 네오고딕이 겹쳐 보입니다. 1717~1735년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개축하면서 고딕 창 일부를 막고 버팀벽 사이에 작은 소성당과 측면 제대를 넣었으며, 천장에는 화려한 스투코와 은수자 성 바오로의 생애를 그린 그림을 더했습니다.
성 바오로회의 역사에서 이 산골의 순례지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1540년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부다의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이 파괴되자 총장과 공동체가 마리안카로 피신합니다. 그 후로 18세기까지 수도회의 총회가 여기서 열렸고, 17세기에는 신학 대학까지 들어섰으니, 마리안카는 명실상부한 수도회의 중심지였습니다.
혁명의 시대를 거치며 쇠락하던 성당은 1877년 성당 창립 5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복원됐습니다. 성 마르티노 대성당 복원에 참여했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나섰고, 지금의 네오고딕 날개 제대와 스테인드글라스도 이때 설치됐습니다.
주 제대 중앙에는 마리안카의 역사를 연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42㎝ 크기의 작은 목상이라 화려한 날개 제대 안에서는 더욱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국왕도, 수도자도, 일개 농부도 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당의 모습은 바뀌어도 순례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성당 주보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과 가까운 주말에는 브라티슬라바와 서부 슬로바키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듭니다.
기적의 샘(위)과 바로크 양식의 거룩한 샘 소성당(아래). 붉은 사암 절벽 아래 3~4m 깊이의 수직 암굴에는 1696년 소성당 건립 때 만든 벽돌 아치와 맑은 지하 샘물이 있다. 순례자들이 물을 받을 수 있도록 파이프가 연결돼 있으며, 소성당 내부 프레스코화에는 성모자상 발견과 마리안카 초기 순례의 역사가 담겨 있다.
성모님 삶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수난 따라 걷는 길
바실리카 뒤편 숲길에 발을 디디면 1710~1729년에 세운 여섯 소성당이 이어집니다. 성모 탄생, 주님 탄생 예고, 마니피캇,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등 성모님의 삶과 기쁨을 구현한 성당이지요.
그 길 끝으로 둥근 돔을 얹은 거룩한 샘 소성당이 자리합니다. 눈먼 이가 눈을 뜬 샘이 있는 곳입니다. 산비탈로는 십자가의 길도 이어집니다. 주님 수난을 재현한 실물 크기의 채색 목조상이 자리해 숲속을 걷다 보면 수난의 한 장면 안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바실리카에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고, 숲으로 들어가 성모님의 삶을 묵상하며 샘물을 마시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따라 그리스도께 향하는 길. 순례의 정신이 이 공간에 펼쳐져 있습니다.
누군가 숲속에서 성모상을 만들었고, 누군가 그 앞에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았으며,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작은 기도가 쌓이고 또 쌓여 성지가 만들어진 것이죠. 하느님께로 향하는 순례인 우리의 삶도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할 겁니다.
<순례 팁>
※ 브라티슬라바 파트론카(Patrónka)에서 광역버스 215번을 타고 마리안카에서 하차(약 20분 소요). 바실리카(예수 성심제대 순교자 성 테오도라 성해)→성모 기쁨 소성당길→거룩한 샘 소성당→십자가의 길 (2~3시간 소요).
※ 바실리카 미사: 주일 및 대축일 08:00·09:30·11:00·18:30·20:00(학기 중), 평일 08:00·18:00.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