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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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런던에 새겨진 ‘밀레니얼 세대 첫 성인’의 발자취

[내 친구 아쿠티스를 찾아서] (1) 성인이 태어나고 세례받은 곳, 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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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친 아쿠티스 가족·런던 간 인연
성인 세례받은 성당에 유해·성상 모셔져
세계 각지서 순례자 찾아와 공경 표해
 

성 카를로 아쿠티스가 35년 전 세례받은 영국 런던 고통의 성모 성당 세례당. 성화와 함께 당시 사용된 청동 세례대와 세례대장이 있다. 
고해소를 고쳐 만든 성 아쿠티스 기도 공간.


첼시의 고통의 성모 성당서 세례

1991년 5월 18일. 영국 런던의 한 성당에서 태어난 지 보름 된 아기가 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인 부부의 아들로, 이름은 가롤로(카를로), 성은 아쿠티스. 훗날 밀레니얼 세대 첫 성인이 된다.

시성 1주년에 시작한 순례 사흘째인 9월 9일, 런던 서부 첼시의 고통의 성모 성당(Our Lady of Dolours Church).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성 카를로 아쿠티스를 소개하는 게시판이 순례자를 반겼다. 아기 시절 모습이 담긴 세례 35주년 기념 포스터와 관련 기사들이 빼곡했다. 전날 그의 출생지인 포틀랜드 병원을 찾은 데 이어, 마침내 세례받은 성당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공교롭게도 이 성당 역시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마리아의 종 수도회(OSM) 신부들이 세웠다.
입구에서 성전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에는 아쿠티스가 제작한 세계 성체 기적 웹사이트의 사진과 설명 자료가 벽을 채우고 있었다. 백발의 노 사제가 소년 같은 미소로 기자와 어머니를 맞이했다. 아쿠티스와 기자보다 50년 앞선 1941년 태어난 본당 보좌 폴 애디슨(Addison) 신부였다.

그의 안내로 처음 향한 곳은 바로 세례당. 1920년대에 제작된 아르데코 양식의 커다란 청동 세례대가 자리했다. “세례대는 전통적으로 성전 입구에 둡니다. 세례를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이지요.”

세례대 양옆에는 아쿠티스의 초상화와 출생일·세례일, 부모와 대부모의 이름이 적힌 세례대장 사본이 놓여있었다. 대장은 대부가 아쿠티스 성인과 이름이 같은 친할아버지였고, 대모는  외할머니인 루아나임을 알리고 있었다.

아쿠티스 가족과 런던의 인연은 3대에 걸친다. 금융업에 종사한 이탈리아 출신 친할아버지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으로 이주한 폴란드 출신 친할머니는 1963년 런던 웨스트민스터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혼인했다. 아버지 안드레아 역시 런던의 투자은행에서 근무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할머니가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지요. 이곳이 가족의 본당이었습니다.”


훗날 아홉 살이 된 아쿠티스는 세례 서약을 갱신한 뒤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례성사라는 이토록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께 아무리 감사드려도 부족할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카를로 아쿠티스에게 세례를 준 고 니컬러스 마틴신부. 마리아의 종 수도회 제공




성인에 세례 준 사제, 난민 위해 애덕 실천

35년 전 아쿠티스에게 세례를 준 사제는 당시 본당 주임이던 니컬러스 마틴(Martin) 신부였다. 이번 런던 순례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같은 수도회 회원으로 1960년부터 그를 알고 지낸 애디슨 신부는 “마틴 신부가 2003년 이미 선종했다”고 알려줬다. 아쿠티스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애디슨 신부에 따르면, 마틴 신부는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다. 템스 강 남쪽에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의료·법률 지원을 연결했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심하게 폭행당해 입원하기도 했단다. 이후 스코틀랜드에서도 난민들을 돕다가 얼굴에 생긴 암으로 58세에 선종했다.

“폭행이 암의 원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목숨을 앗아간 것은 암이었지요.”

애디슨 신부는 “본당과 수도회는 아쿠티스에게 세례를 준 마틴 신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마틴 신부 역시 성인처럼 애덕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세례를 준 소년의 시성을 얼마나 기뻐했을까. 이런 생각을 전하자 애디슨 신부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나라에서 카를로와 함께 축하 잔치를 열었을 겁니다.”

성당 한쪽에는 아쿠티스의 머리카락 유해와 성상을 모신 작은 기도 공간도 있었다. 붉은 셔츠에 배낭을 메고 묵주를 든 아쿠티스 성상 양옆에는 어록과 신앙생활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제안한 ‘성인이 되는 다섯 단계’였다. 자주 성체를 모시고 성체조배를 하며,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를 받고,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 대한 신심을 기르고, 애덕을 실천하라는 내용이었다.

애디슨 신부는 “세계 곳곳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특히 “유랑 민족인 집시 가톨릭 신자들도 젊은이들을 데리고 와 아쿠티스에게 공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카를로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운동을 좋아했고, 인터넷과 음악도 좋아했지요. 그러면서도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성인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성당과 수도회가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잇는 통로는 성인을 기리는 작은 기념관이 돼 있었다. 지역 젊은이들이 직접 꾸민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축구팀 유니폼을 입거나 색소폰을 부는 아쿠티스의 사진과 게임기·컴퓨터 등이 눈에 띄었다.

“카를로의 죽음은 참으로 큰 슬픔이었습니다. 저도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젊은이들을 돌본 적이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가족과 밀라노로 돌아간 아쿠티스. 15년의 짧은 생애에서 런던에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세례받은 성당에는 그를 기리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사제관에서 성인의 대형 흉상도 만났다.

 
성당 사제관에서 아쿠티스 성인 흉상과 함께한 보좌 폴 애디슨 신부와 기자의 어머니 정진 동화작가.


“유럽 교회는 조용하지만 살아있다”

런던에 막 도착했을 때는 성공회 전통이 강한 이곳에서 가톨릭교회가 어떤 모습일지, 신자들이 아쿠티스를 잘 기억하고 있을지 걱정 반 호기심 반이었다. 출생 병원 근처에서 우연히 들어간 성 가롤로 보로메오 성당에서 그 답을 찾았다.

입구에는 아쿠티스의 사진과 함께 저소득층 식료품 지원 모금함이 놓여있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다양한 피부색의 신자 30여 명이 하나같이 열심한 모습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보편성과 다민족 도시 런던의 특색을 느꼈다. 주교좌성당에서의 장엄한 미사와 소년 성가대의 아름다운 노래도 인상적이었다.

유럽 교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어왔던 어머니 정진(로사) 동화작가는 애디슨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유럽의 교회가 죽었다고 했을까요? 런던의 성당은 이렇게 살아있는데요!”

애디슨 신부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조용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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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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