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 경구 비웃듯 콩코르드 광장 미사 70만 명 운집
단 한 건의 폭력·상해 사건 없이 마무리돼 깊은 울림
“합법적인 것이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죽음·생명 개인 권리로 법제화한 사회 향해 분명한 목소리
레오 14세 교황이 9월 25~28일 프랑스 교회를 사목 방문하는 기간, 파리에서 유학 중인 수원교구 이관희 신부가 동료 프랑스 사제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관희 신부 제공
이번 레오 14세 교황님의 프랑스 사목 방문(9월 25~28일)은 내게 교황님을 직접 영접하는 첫 기회였다. 2014년 아시아청년대회(AYD) 때엔 군 복무 중이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뵙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나보낸 뒤, 이제 레오 14세 교황님을 눈앞에서 뵐 수 있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좌의 후계자이자 전 세계 그리스도교 일치의 아이콘을 실제로 만난다는 것은 어느 그리스도인에게나 오래 기다려 온 순간일 것이다.
“20년 뒤에는 그리스도교가 사라질 것이다. 열두 사도가 세운 그 대계를 내 한 손으로 무너뜨리겠다”는 볼테르의 경구를 비웃기라도 하듯, 9월 26일 파리 도심과 샹젤리제는 신자들로 가득했다. 콩코르드 광장 미사에는 7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모였다. 행렬 중 교황님께 축복받는 아기들과 사람들의 손에 들려 교황님 가까이 다가간 장애인들의 환한 웃음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결국 사랑이며 특히 작고 약한 이들에게 손 내미는 데 있음을 말없이 보여 주었다.
거리마다 고해성사를 베푸는 사제들이 앉아있었고, 파리 한복판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흘러넘치는 듯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토록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였음에도 단 하나의 폭력이나 상해 사건 없이 마무리된 사실이었다. 대규모 군중집회가 흔히 폭력과 충돌로 끝나는 모습을 거듭 보며 피로를 느껴온 프랑스 사회에 이 장면은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다.
9월 25일 스타드 드 프랑스에는 8만 명의 젊은이가 모였다. 성녀 잔 다르크·성녀 소화 데레사·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등 프랑스 성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젊은이들은 스타를 만난 듯 환호했다. 2년 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장면들에서 우리가 확인했던 세속주의와 교회를 향한 조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교황님은 외쳤다. “여러분이 프랑스의 성인들입니다!” 이는 과거의 성인들을 추억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늘의 젊은이들 역시 같은 성덕으로 불림 받았다는 선언이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프랑스 교회를 사목 방문하는 동안,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는 수원교구 이관희 신부도 9월 26일 파리대교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교황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이관희 신부 제공
청년들을 향한 교황님의 특별한 메시지도 깊이 남았다. “밤이 깊을수록 빛은 더 밝게 보입니다. (중략) 불안이 사라져야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시기에 바로 그 불안과 약함 속에서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평을 희망으로 소화해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하라는 초대였다.
이번 방문은 사회 안에서 신앙이 어떤 자리를 가져야 하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1905년 정교분리법 이후 ‘비종교성’은 프랑스 공화국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교황님은 단언하셨다. 신앙이 국가를 지배해서도 안 되지만 종교가 시민사회의 대화에서 추방되어서도 안 되며, 서로 다른 신앙이 함께 숨 쉬며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동시에 “합법적인 것이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최근 죽음과 생명의 문제를 개인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법제화한 프랑스 사회를 향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파리와 루르드, 메츠를 잇는 3박 4일의 바쁜 여정을 기쁨으로 소화하는 교황님 모습에서 목자의 얼굴을 보았다. 파리에서 교황님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모호하게 남겨두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분명히 선포했고, 성인들의 삶을 통해 성덕의 길을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복음에 투신할 것을 요청했다.
그 확실한 메시지 안에서 젊은이들은 저마다 찬양과 기도로 응답했다. 이는 내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준비하는 우리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2)라는 주님 말씀을 되새기며 그리스도를 분명히 선포하면서 각국 젊은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그분을 찬미하고 희망을 표현할 장을 열어 주었으면 한다. 분명 성령께서는 다양한 우리의 얼굴을 통해 하나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수많은 길을 보여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