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달라진 게 또 있다. 이번 포르투갈 해안 길은 남편 안톤과 ‘따로, 또 같이’ 걸었다. 처음 사흘은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했지만 내 무릎 사정을 뻔히 아는 안톤이 앞서가는 게 야속했고, 그 역시 내 걸음에 맞추느라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게 답답했을 거다.
걷는 속도가 다르니 사진 한 장, 커피 한잔에도 “좀 기다려!”, “또 쉬어?” 하며 티격태격했다. 결국 나흘 째부터는 아침 8시에 출발해서 10시쯤 모닝커피까지만 같이 마시고, 그날의 숙소까지 따로 걷기로 했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나는 내 속도인 ‘라르고(Largo)’로 걸으며 마음껏 경치를 즐기고 카페에 앉아 일기도 썼다. 안톤은 ‘프레스토(Presto)’ 속도로 일찌감치 숙소에 도착해 낮잠도 자고, 주변도 둘러보았다. 한나절 따로 걷다 다시 만나니 오히려 서로에게 더욱 살갑고 다정해졌다.
혼자 걸으니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특히 나처럼 부상으로 천천히 걷는 이들과는 금세 동지가 되었다. 순례자들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저마다 사연과 십자가가 있었다. 물집 때문에 느리게 걷던 마리따도 그랬다. 대학 가면 함께 순례길을 걷자던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완전히 신앙을 잃었단다. 엄마 사진을 품에 안고 걷고 있다는 그녀가 말했다.
“이 길이 끝나면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엄마가 그걸 간절히 바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발목을 다쳐 나와 나란히 걷던 이탈리아인 마우리치오는 절뚝거리는 순례자에게 기꺼이 자기 지팡이를 내어주었다. 그 모습에 농담으로 ‘수사님’이라고 불렀더니, 놀랍게도 얼마 전 수도원을 나온 수사였다.
“그동안의 교만을 깊이 참회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며 걷는 중입니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의 감동은 압도적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엄마, 나란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수녀님들, 목청껏 성가를 부르며 서로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는 청소년들….
우리도 뿌듯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고는 두 시간 넘게 광장에 앉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을 바라보았다. 세상 어느 축제가 이토록 순수하고 흥겨울까? 아무도 하루에 몇 km를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묻지 않았다. 각자의 속도로 끝까지 걸어온 모두가 이 눈부신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안톤과 나 또한 ‘따로, 또 같이’ 걸어 사이좋게 완주할 수 있었음에 기뻐하며 감사기도 드렸다. 다음 순간,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은 산티아고 길처럼 삶이라는 순례길에서도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충실히’ 걸었는가를 보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명확해진다. 타인의 빠른 걸음에 조바심 내지 않고, 내 십자가를 품은 채 내 속도로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인생 순례길에서 하느님께 ‘온몸으로 드리는 기도’일 거다.
나의 길을 충실히 걸어 마침내 삶의 종착지에 도착한 날이, 후회나 아쉬움 대신 오늘 광장처럼 기쁨이 넘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방금 들어선 내게 하느님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시면 참 좋겠다.
“수고했다. 내 딸아. 어서 오렴.”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