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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말고 인간!] AI가 읽는다? 그래도 인간만이 아로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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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마주 앉은 승객들의 손끝은 하나같이 화면 위를 오간다. 뉴스 기사 하나를 다 읽었다고 느끼며 화면을 내려놓지만, 정거장 두어 개를 지나면 방금 읽은 제목조차 흐릿해진다. 반면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은 문장 하나는 며칠이 지나도 문득 떠오른다. 같은 글자를 읽었는데, 왜 하나는 스치고 하나는 마음에 새겨지는가.

이 물음에 ‘뇌파’로 답한 연구가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 산하의 언어 및 인지 뇌과학 연구실은 2024년 5월, 뉴욕 대도시권의 중학생 59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아이들에게 여러 편의 설명문을 종이 인쇄물과 노트북 화면으로 각각 읽힌 뒤, 읽은 내용과 관련 있는 단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하면서 뇌파를 살폈다. 눈길을 끈 것은 대놓고 관련 있거나 대놓고 무관한 단어가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한 단어를 마주했을 때였다.

화면으로 읽은 아이들의 뇌는 이 애매한 단어를 보고도 “이건 상관없는 말이네” 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반면 종이로 읽은 아이들의 뇌는 같은 단어를 보고 “어, 이거 아까 읽은 거랑 통하는데” 하듯 반응했다. 연구진은 이 차이를 종이로 읽은 글일수록 아이들 머릿속에 더 촘촘한 의미의 연결망이 형성됐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신호로 해석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문제를 얼마나 맞혔는지, 얼마나 빨리 풀었는지를 보면 종이든 화면이든 아이들의 성적은 큰 차이가 없었다. 시험지만 놓고 보면 둘 다 똑같이 잘한 셈이다. 그런데 뇌는 달랐다. 겉으로 드러난 이해도는 비슷했지만, 그 이해가 머릿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보여 주는 뇌파 신호는 종이 쪽이 더 뚜렷했다. 성적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던 차이였다. 우리가 읽기에서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차이가 의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결과는 요즘 우리가 겪는 읽기와 겹친다. 화면을 밀어 올리며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다음 문장과 기사로 넘어가는 데만 마음이 가 있다. 이해했다는 감각은 들지만, 그 문장을 오래 붙들어 이미 알던 것과 이어 붙이지는 않는다. AI에게 요약을 맡길 때는 더하다. 결론만 받아 쥐면 다 읽은 것 같지만, 정작 문장과 문장을, 새로 안 것과 이미 알던 것을 스스로 이어 붙이는 수고는 건너뛰게 된다. 그 수고야말로 스치는 정보를 마음에 아로새기는 유일한 방법인데 말이다.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옮겨 담는 일이 아니다. 한 문장이 다음 문장과 만나고, 그 만남이 이미 알고 있던 것과 부딪히며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흔적이 깊을수록 나중에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앎’이 된다. AI는 방대한 텍스트를 순식간에 훑어 그럴듯한 요약을 내놓지만, 그 요약을 받아 든 사람의 마음에 흔적이 남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흔적은 오히려 옅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손에 쥐여 주는 일이 새삼 중요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완독의 경험, 긴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는 인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확인하는 손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에 무언가를 아로새기고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끝까지 읽은 책은 언제였는가. AI가 읽는다? 그래도 인간만이, 아로새긴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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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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