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3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AI 말고 인간!] AI가 가르친다? 그래도 인간이 배워야 한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지난 추석, 완벽한 차례상 위에는 정작 아무도 모르는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며느리는 인터넷에서 ‘차례상 차리는 법’을 검색했고, 화면 속 정갈한 표는 홍동백서와 조율이시까지 순서대로 일러주었다. 상은 표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만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정작 그 앞에 선 사람들 가운데, 대추가 왜 그 자리에 놓였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과 뉴멕시코주립대학교 공동연구진은 2025년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 익숙한 장면의 속내를 밝힌다. 연구진은 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모아, 한쪽은 생성형 AI의 요약으로, 다른 한쪽은 기존 방식대로 웹 검색 링크를 하나하나 찾아 읽게 했다. 그 뒤 각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써 보게 했더니, AI로 배운 이들의 글은 유독 짧았고 구체적인 근거도 적었으며 서로의 글이 놀랍도록 비슷했다. 정보를 직접 찾아 나선 사람들과 달리, 힘을 덜 들인 자리에는 남는 것도 적었다는 뜻이다.

이 조언들을 누가 썼는지 밝히지 않은 채 1493명에게 평가를 맡기자, 사람들은 AI로 배운 이의 조언을 한결같이 덜 유익하고 덜 믿음직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AI는 정답을 가르쳐 줄 뿐, 그 정답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비로소 배움이 된다고 짚는다.

차례상 앞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화면 속 표를 그대로 따라 하면 상은 차려지지만, 그 뜻은 차려지지 않는다. 대추는 씨가 하나여서 임금을 뜻하고, 밤은 세 톨이 나기에 삼정승을 뜻하며, 나물과 생선은 각각 땅과 바다의 결실을 대표해 나란히 놓인다는 것. 이런 이야기는 검색창이 아니라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물어야 들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새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AI는 가르친다. 배움은 그 가르침을 스스로 붙잡고 씨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화면 속 표는 상차림의 순서를 알려주지만, 그 순서 뒤에 담긴 마음까지 옮겨주지는 못한다. 조상을 기억하는 일도, 곁에 있는 가족을 헤아리는 일도,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앙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리서를 통째로 외운다고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기도문을 수십 년 바치고도 그 뜻이 삶에 스며들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짧은 한 구절을 붙들고 평생을 씨름하며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빚어낸 이도 있다.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배움은 저마다 다른 무게로 새겨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그 가르침과 씨름했느냐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가르침을 내놓아도, 그 가르침을 배움으로 바꾸는 몫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명절은 지나갔지만, 그 물음은 지나가지 않았다. 조상이 왜 그 자리에 대추를 놓았는지, 부모님이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가르침만으로는 끝내 내 것이 되지 않는 그 이유를 다음에 만나면 다시 여쭤보자. 가르침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배움은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AI가 가르친다? 그래도 인간이 배워야 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10-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0. 13

1테살 2장 13절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