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민이나 천인들이 쓰던 투박한 모자인 패랭이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우리나라에서 패랭이꽃이라 불리는 이 꽃의 학명은 디안투스(Dianthus)로, 어원은 신의(dios) 꽃(anthos)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신의 꽃이 세상 반대편에서는 신분이 가장 낮은 이들의 모자를 연상시키는 소박한 꽃이 되는 반전. 그런데 가장 높으신 분께서 이 세상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음을 아는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반전만은 아닌 것 같다.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루치아 임펠루소는 「자연과 상징, 그림으로 읽기」에서 패랭이꽃이 예수님의 수난을 상징한다고 언급했다. 패랭이꽃은 가늘고 긴 꽃대 끝에 맺힌 둥근 꽃봉오리가 못을 떠오르게 해서 키오디노(chiodino)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는데, 키오디노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못’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름에서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박혔던 못을 자연스레 떠올리고 그분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했다.
패랭이꽃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꽃으로 유럽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중세 이후부터다. 성모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보며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져 패랭이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널리 퍼지면서 많은 화가가 작품에 패랭이꽃을 즐겨 그려 넣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가 각각 그린 성모님이 팔에 안긴 아기 예수님에게 검붉은 꽃을 건네는 ‘카네이션의 성모’가 대표적이다(카네이션은 패랭이꽃의 일종으로, 석죽과 패랭이꽃속에 속한다).
패랭이꽃은 각종 세속화에서도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을 상징하는 소재로 등장하며 ‘사랑의 약속’이라는 꽃말을 얻었다. 그중 붉은 홑겹 패랭이꽃은 ‘순수한 사랑’을 뜻한다. ‘순수한 사랑의 약속’은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잔잔히 흐르는, 비통하면서도 숭고한 주선율이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성모님은 그 아래서 눈물을 흘린다. 작은 못을 닮은, 성모님의 눈물을 연상시키는 패랭이꽃은 우리를 그 수난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한편 유럽의 고산 지대에는 카르투시아노룸 패랭이(Dianthus carthusianorum)라는 야생종이 자란다. ‘카르투시아노룸’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알프스의 샤르트뢰즈 계곡에 세워진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 유래했다. 이 꽃은 ‘성모님의 짚 더미(Our Lady’s Bedstraw)’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길쭉하게 뻗은 꽃대와 푹신하고 부드러운 잎이 아기 예수님의 구유에 깔렸던 지푸라기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