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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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의 박해로 메워진 ‘성모의 샘’, 마르지 않는 신심으로 부활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93. 네덜란드 헤일로 성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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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 성모 성지의 은총 소성당과 ‘성모의 우물’인 룽크스퓌트. 1905년 옛 소성당과 우물 터가 다시 발견된 뒤 1909년 임시 소성당을 세웠고, 1930년 현재의 석조 소성당을 다시 지었다. 과거에는 무릎을 꿇고 소성당 주위를 돌며 순례했으며 지금은 숲속에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하를렘-암스테르담교구의 공식 교구 성지이며, 2006년부터 ‘주님과 마타라의 동정녀의 시녀회’(SSVM) 수도자들이 교리교육과 피정, 성지 사목을 돕고 있다.


유럽 성지를 순례하면 자주 마주치는 것이 있습니다. 병의 치유와 관련된 ‘샘과 우물’입니다. 이미 소개한 여러 순례지에 깊은 우물이나 샘이 있고, 루르드에서는 성모님이 발현하신 마사비엘 동굴 기적의 샘에 몸을 담그기 위해 순례자들이 매일 줄을 길게 섭니다.

물이 귀했던 옛사람들에게 땅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은 그 자체로 생명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전해지기 전부터 샘과 우물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뒤에는 이런 장소들이 성인의 선교나 세례, 치유의 기적과 결합해 일상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성스러운 자리가 됐지요.

오늘 찾아갈 성모 성지도 샘에서 시작된 순례지입니다. 루르드나 파티마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매년 수만 명이 찾는 네덜란드의 최대 성모 순례지입니다. 네덜란드 북부 헤일로(Heiloo)에 자리한 ‘온저 리버 프라우 터 노트’, 우리말로 옮기면 ‘곤경 중에 도움을 주시는 성모’께 봉헌된 성지이지요.

 
헤일로 성모 성지의 은총 소성당 주 제대와 본랑. 제대 뒤에는 한스 멩엘베르흐가 1908년 제작하고 1923년 채색한 성모상이 모셔져 있고, 주변으로 천상 잔치와 평화의 모후, 병자의 도움, 곤경 중에 도움을 주시는 성모가 묘사돼 있다. 측벽에는 성전 봉헌과 예수 성탄, 성모 방문, 성모 대관, 십자가 죽음,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의 장면이 이어진다.


폭풍에서 지켜주신 성모 위해 세워진 소성당

헤일로는 암스테르담에서 북쪽으로 약 30㎞, 노르트홀란트주의 작은 도시입니다. 이곳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물’이 함께했습니다. 마을 복판에는 700년 무렵 위트레히트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던 성 빌리브로도가 물이 부족한 이곳 주민을 위해 판 우물이 있고, 마을 남쪽에도 오늘 성모 성지의 시작점이 된 오래된 샘이 있습니다.

헤일로 역을 나와 철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작은 숲에 다다릅니다. 헤일로는 ‘거룩한 숲’, ‘거룩한 숲의 빈터’라는 뜻입니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숲속에서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사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열린 공간에 은총 소성당이 자리합니다.

소성당 외관은 수수합니다. 앞마당에 ㄷ자 모양 회랑이 감싸고 있는 우물 룽크스퓌트가 보입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성모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구원사를 그린 화려한 벽화가 성모 신심 교리서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14세기 말 어느 농부가 우물 부근 밭에서 성모상을 발견하고는 집에다 모셨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성모상이 우물 옆으로 되돌아가 있는 게 아닙니까. 이런 일이 거듭됐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헤일로 앞바다에서 거센 폭풍을 만난 배가 성모님의 도움으로 항구에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선장은 폭풍 속에서 “나를 공경하면 바람이 돌아설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돌아가면 성모 소성당을 세우겠다고 서원했지요. 항구에서 성모상의 기적을 전해 들은 선장은 우물곁에 소성당을 세웠습니다.

 
헤일로 성지의 순례성당. 1913년 약 9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 목조 성당으로 세워졌으며, 훗날 더 큰 성당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대공황으로 실현되지 않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1950년대 말 사제석과 후진을 확장했고, 1988년 지붕을 슬레이트로 교체했다. 내부에는 건립 당시의 장식이 남은 목조 지붕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소박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이룬다. 정면 지붕 위의 현재 종탑과 세 개의 종은 1996년에 설치했다.


성모님께 도움 청하자 닫힌 우물에서 솟구친 물

물론 지금 소성당은 중세 건물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이 작은 성모 성지도 비켜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북부와 서부에서 신교가 우세하게 되며, 가톨릭이 박해받습니다. 1573년 알크마르 공방전 중에 헤일로의 성모 소성당도 파괴됩니다. 그런데도 순례가 끊이지 않자 1637년 신교 정부는 성당을 완전히 철거하고, 잔해와 돌로 우물을 메워버렸습니다.

1713년 헤일로 일대에 소 전염병이 돕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농가에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절망한 농부들은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옛 터를 찾아와 성모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날 밤 놀랍게도 돌로 메워진 우물 밑에서 물이 힘차게 솟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걷어내 물을 길어 소에게 먹이자, 소들이 나았습니다. 이후 룽크스퓌트는 ‘성모의 샘’이라 불렸고, 이곳에서 성 빌리브로도 우물까지 행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국의 박해로 우물은 다시 메워져 폐허가 되고 말았죠.


신앙 자유 찾으며 300년 만에 다시 시작된 순례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가톨릭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되찾으면서 성지가 되살아납니다. 1905년 3월 20일, 나무와 잡초에 뒤덮인 땅에서 메워진 우물과 소성당 터가 발견된 뒤, 7월 16일 첫 공식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95세였던 케이스 엥케라는 노인이 함께했는데, 어린 시절 이전 세대의 마지막 순례를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한자리에서 이어진 겁니다.

1909년에 임시로 작은 소성당을 세웠고, 1912년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 더 많은 순례자를 위해 순례 소성당도 새로 지었습니다. 1930년에는 오늘날의 석조 소성당을 지었죠. 한때 순례자를 태운 특별 열차를 위한 역도 바로 옆에 세워질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아들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유럽국가 중에서도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된 나라지만, 헤일로에는 매일 순례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매달 젊은이들이 모여 피자를 먹고는 교리를 공부하며 성체조배와 고해성사를 합니다. 함께 친교를 나누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초대 교회 공동체가 떠오릅니다.

우물에서 물을 담으며 생각합니다. 신앙의 장소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성당을 허물고 우물을 메워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면 됐으니까요. 하지만 신심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봅니다. 성모 소성당과 샘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졌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샘이 솟고 사람들이 돌아왔듯, 신앙도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길을 내는 건 아닌지요.

 


<순례 팁>

※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헤일로까지 NS 직행열차로 30분 소요(30분 간격). 역에서 ‘룽크스퓌트 루트’를 따라 성지까지 도보 약 15분.

※ 성지 미사: 주일 및 대축일 9:00·16:00(은총 소성당), 10:30(순례 소성당), 평일 10:30(은총 소성당), 매주 첫 토요일 10:30·12:00(순례 소성당), 매주 둘째·넷째 화요일 18:30 라틴어 미사(은총 소성당). 순례자 숙소 및 피정의 집(옛 율리아나 수도원), 성물방과 카페(헤트 외스돔).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차윤석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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